일라이 린든 (4) Beloved Bird

뤼튼 캐릭터챗 '일라이 린든'
create by 예리엘
edited by 베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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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돌아가봐야겠네요." 일라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이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몸이 빛나며 작은 새로 변했다. 하얀 깃털이 석양에 반짝이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열린 창문 틈으로 날아올랐다.

린든하우스의 창문을 향해 날갯짓하는 동안,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일라이와의 대화로 두근거렸다.
 
린든하우스, 천장 위 둥지로 들어가려는 순간, 삐삐의 깃털 하나가 떨어졌다. 현관으로 들어오던 일라이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제 괜찮은가?' 일라이가 위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혹시 꾀병 부린 거야? 삐삐." 그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손을 내밀자, 삐삐는 그의 어깨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을 해서 미안했지만, 오늘 그와 보낸 소중한 시간이 떠올라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삐이삐이~ (괜찮아, 일라이.)"
 
삐삐가 즐겁게 지저귀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일라이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구나. 걱정했잖아."
 
그가 부드럽게 삐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석양이 린든하우스의 초록 지붕 위로 저물어갔다. 오늘은 유난히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일라이가 거실 테이블 위에 동화책과 초대장을 내려놓았다. 그의 어깨에 앉아있던 삐삐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했다.
 
"옷 좀 갈아입고 올 테니, 착하게 있어." 삐삐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2층으로 향했다.

삐삐는 테이블 위에 내려앉아 동화책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옆에 놓인 초대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진주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고급스러운 봉투였다.
 
"삐이? (이건 뭐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삐삐가 봉투를 콕콕 쪼아대기 시작했다.
 
"야, 그거 찢으면 안 돼." 계단을 내려오던 일라이가 웃으며 말했다. 흰 셔츠에 회색 면바지를 입은 모습이 평소의 딱딱한 인상과는 달랐다.
 
"궁금한 거야? 왕실에서 온 무도회 초대장이야." 그가 삐삐의 곁으로 다가와 초대장을 집어들었다.

 

"벨레카 영애가 전해준... 그런데 난 무도회같은 건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일라이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불편함이 묻어났다. 삐삐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삐이... (걱정되네...)"
 
삐삐는 일라이의 표정에 서린 피로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어깨가 평소보다 더 긴장된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날개를 접으며 초대장 옆으로 다가갔다.
 
벨레카 영애가 보냈다는 말에 가슴 한켠이 살짝 불편해졌지만, 지금은 일라이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더 신경 쓰였다.

"삐이삐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삐삐는 일라이의 손등을 부드럽게 쪼았다.
 
일라이는 그런 삐삐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해주는 거야? 난 괜찮아."

삐삐는 일라이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몸을 비볐다. 귀족들의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부담일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벨레카 영애가 있을 자리라면 더욱... 삐삐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의 모습이 아닌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그의 옆에 있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일라이는 잠시 삐삐가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비비적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부엌으로 향했다.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설거지를 마친 그는, 가방에서 오늘 마무리하지 못한 도서 목록을 꺼냈다.

사브리나가 일찍 보내준 덕분에 아드리안 아가씨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만큼 밀린 일이 있었다.

"미안해 삐삐, 오늘은 동화책을 읽어줄 수 없을 것 같아." 일라이가 서재로 향하며 말했다.
 
도서관에서 새로 들어온 고서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분류하는 작업이 남아있었다.

삐삐는 그의 뒤를 따라 날아가며 작게 지저귀었다. 사실 오늘 그와 함께한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서재의 램프 불빛 아래, 일라이는 꼼꼼하게 서류를 정리해나갔다. 때때로 그는 생각에 잠겨 펜을 멈추곤 했다.
 
그의 금발이 은은한 불빛에 반짝였고, 푸른 눈동자는 진지하게 책에 집중해 있었다.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삐삐는 조용히 날개를 접고, 일라이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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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났다." 일라이는 깊은 한숨과 함께 펜을 내려놓았다. 시계는 이미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는 고서 분류 목록과 점검표를 꼼꼼히 갈색 봉투에 넣으며 내일 도서관에 제출할 서류를 정리했다. 램프 불빛이 그의 지친 얼굴을 비추었다.

"이제 자자..." 일라이가 램프를 끄며 중얼거렸다. 삐삐는 이미 익숙한 듯 그의 침대 머리맡 작은 쿠션으로 날아가 앉았다.

"잘 자, 삐삐." 일라이가 작게 속삭였다. 그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침대에 누웠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드리안 아가씨와의 만남, 동화책, 그리고 무도회 초대장까지... 생각할 것이 많았지만, 피곤함이 먼저 찾아왔다. 

삐삐의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일라이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침대 머리맡의 쿠션에서, 삐삐는 일라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긴 속눈썹이 달빛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삐삐는 조용히 날개를 접으며 눈을 감았다. 내일도 그의 곁에서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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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일라이보다 먼저 일어나 그를 깨우는 게 내 일과인데... 오늘은 왜 이리 개운하지?

눈을 뜨자마자 창가로 쏟아지는 밝은 햇살에 나는 화들짝 놀라 날개를 펄럭였다.
 
"삐이익?! (이런, 늦었어!)"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8시 30분. 일라이는 9시까지 도서관에 도착해야 하는데!

"일라이, 일라이!" 나는 그의 금발을 콕콕 쪼아대며 다급하게 울었다.

"삐이삐이! (늦었어, 빨리 일어나!)"  평소라면 이런 행동을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으음... 삐삐야... 조금만..." 그가 중얼거렸다. 아, 이럴 때가 아닌데! 나는 더 세게 그의 머리카락을 쪼았다.
 
마침내 일라이가 눈을 떴고, 시계를 본 순간 벌떡 일어났다. "벌써 8시 반이야?!"
 
일라이는 허둥지둥 침대에서 뛰어나왔다. 그 바람에 이불이 내 쪽으로 날아와 나는 잠시 하얀 천 아래에 갇혀버렸다.
 
"삐이익! (으악!)"

"아, 미안해 삐삐!" 일라이가 이불을 치우며 말했지만, 그도 정신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셔츠 단추를 잘못 채우고, 양말도 서로 다른 걸 신으려다가 발견하고... 평소의 단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삐이삐이~ (조심해~)" 나는 그의 엉망진창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조안이 또 뭐라고 할 텐데..." 일라이가 넥타이를 매며 투덜거렸다. 나는 그의 어깨에 앉아 넥타이를 콕콕 쪼아댔다. 이걸 이렇게 매면 안 되는데... 

하지만 새의 모습으로는 그걸 바로잡아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거울 앞에서 마지막으로 머리를 매만지는 일라이를 보며, 나는 재빨리 천장의 둥지로 날아올랐다.
 
"삐이삐이~ (오늘은 빈 집을 예쁘게 꾸며놓을 거야!) "

 

오늘은 꼭 뒷 집의 거실에 예쁜 꽃병도 놓고, 책장도 정리하고 싶었다.
 
"삐삐, 나랑 같이 가자." 일라이가 현관에서 불렀지만,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삐이~" (오늘은 여기 있을래.) 둥지 안에서 작게 지저귀며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일라이는 한숨을 쉬며 시계를 확인했다.
 
"이런, 더 늦겠네. 그래, 집에서 쉬렴."

일라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고, 나는 창가로 날아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평소보다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멋있었다.
 
이제 나만의 시간이다! 나는 신이 나서 날개를 퍼덕였다. 오늘은 꼭 그 집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놓을 거야.

그리고... 어쩌면 또 한번 인간의 모습으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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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모습에서 인간으로 변하자 붉은 곱슬머리가 어깨를 덮었다. 주방 뒷 문으로 나가려 몸을 돌리던 때, 협탁 위에 놓인 갈색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제출'이라고 적힌 메모를 보자마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 어쩌지..." 손톱을 깨물며 고민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전달하자니 너무 수상해 보일 것 같고, 새의 모습으로는 봉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 같고... 하지만 시계는 이미 9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에잇, 모르겠다!" 나는 봉투를 움켜쥐고 도서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중요한 서류일 거야. 어제 늦게까지 작성하던 걸 봤는데...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서류를 품에 꼭 안고 도서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의 시계탑이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발, 제발 늦지 않게..."

담장 위에서 내 모습을 본 까망이가 "야옹?" 하고 의아한 듯 울었다. 평소 도도하게 굴던 고양이가 이번엔 담장을 따라 내 옆에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왜 그러고 뛰어가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미안해 까망이,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어!"

까망이는 한동안 따라오다가 포기한 듯 발걸음을 멈추고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담장 위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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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며 도서관 입구로 뛰어들어왔다. 시계는 8시 57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평소라면 절대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인데...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었다. 고개를 들자 사브리나 님이 대출대 너머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네요, 린든 군." 사브리나님이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괜히 머리를 넘기며 시선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서..." 정직하게 대답하자 사브리나 님은 더 환하게 웃었다.
 
"가끔은 그럴 수도 있죠. 어제 일찍 보내드린 건 잘한 것 같네요."
 
자리에 앉자마자 서류부터 확인하려 가방을 열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작성했던 서류가 보이지 않았다. 가방 안을 뒤지고 또 뒤졌지만 없었다. 순간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설마..." 집에 두고 온 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책상을 손으로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린든 군, 오늘 제출할 서류는 어디 있나?" 조안이 내 책상 앞에 서서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순간 속이 차갑게 식었다. 

"잠시만요..." 내가 가방을 다시 한번 뒤지는 동안, 조안은 점점 더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런, 우리의 완벽한 일라이 린든이 서류를 깜빡했다?" 조안이 비웃듯 말했다. "아니면 애초에 작성을 안 한 건가? 어제 조퇴하더니."

그의 입가에 짜증나는 미소가 걸렸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냉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침착할 수 있을까.

"오늘 마감인 중요 서류를... 이거 큰일이네. 왕실 도서관의 새로운 고서 관리 계획이 담긴 문서인데." 조안이 으스대며 말을 이어갔다. "평민 주제에 너무 거만했어. 이번 일로 네가 얼마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서관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였다. 나와 조안, 그리고 사브리나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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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라이 린든 님의 서류를 전달하러 왔는데..."

붉은 곱슬머리를 한 아가씨가 숨을 헐떡이며 입구에 나타났다. 조금은 상기된 뺨이 보였고, 하얀 원피스 자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조안의 말이 멈췄고, 사브리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페이는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일라이의 창백한 얼굴과 조안의 으스대는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죄송해요, 늦었나요?" 페이는 우아하게 미소지으며 조안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일라이 씨께서 어제 저희 집에 방문하셨을 때, 실수로 서류를 두고 가셨더라고요. 마침 오늘 아침 산책을 나왔다가 발견했답니다."

사브리나는 관심 어린 눈빛으로 페이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시군요. 린든 군이 어제 일찍 퇴근한 게 그런 이유였군요." 사브리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페이는 천천히 일라이에게 다가가 봉투를 건넸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일라이의 푸른 눈과 마주쳤다. 

"앞으로는 이런 중요한 걸 두고 가시면 안 돼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스러운 꾸짖음이 묻어있었다.

일라이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저 고마움에 겨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린든 군, 아가씨를 소개해주시지 않으시나요?" 사브리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일라이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페이가 먼저 나서서 우아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페이 아드리안이라고 합니다. 일라이 씨의 이웃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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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이라고 하셨나요?" 사브리나가 놀란 눈으로 페이를 바라보았다. 조안의 얼굴도 순간 굳어졌다.
 
아드리안가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명문가로, 특히 그들이 만드는 '진청의 눈물'이라 불리는 잉크는 왕실에서도 즐겨 쓰는 것이었다.

그들은 잉크뿐만 아니라, 최고급 양피지와 특수 제작된 종이, 그리고 책 제본에 사용되는 특별한 가죽 가공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외국의 왕실에서도 그들의 제품을 구하기 위해 특사를 보낼 정도였다.

일라이는 동료들의 반응이 의아했지만, 문득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잉크통이 눈에 들어왔다.

청색 유리병에는 아드리안가의 문장인 날개를 편 독수리가 섬세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잉크였다.
 
잉크를 종이에 묻히면 처음엔 짙은 남색이었다가, 마르면서 깊이 있는 청색으로 변하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페이의 성씨가 가진 의미를 깨달았다.

"아드리안 백작님의 따님이신가요?" 조안이 갑자기 공손한 태도로 변했다. 페이는 우아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일라이 씨의 이웃일 뿐이에요." 그녀의 말에 사브리나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일라이는 여전히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자신의 이웃이 그런 명문 가문의 아가씨였다니... 아가씨는 자신을 도와주러 체면도 차리지 않고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왠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라이는 서류 봉투를 조안에게 건넸다. 조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들고 서류를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간간이 페이를 향했다. 아드리안가의 딸이라...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페이는 여전히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조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에는 은근한 압박감이 묻어있었다.

"흠... 나중에 자세히 확인하도록 하죠." 조안이 마지못해 말했다. 그는 서류를 품에 안은 채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페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일라이 씨, 다음에 또 뵐게요." 일라이와 사브리나를 향해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서둘러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사브리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일라이를 바라보았다.

"...린든 군, 따라가 보지 않으시나요?"

사브리나가 평소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스러운 톤이 묻어있었다.
 
일라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저..." 말끝을 흐리며 그는 도서관을 빠져나가는 페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녀를 쫓았다. 일라이가 그녀를 불렀지만, 페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더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그녀의 붉은 곱슬머리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흔들렸다. 페이는 자신이 어떻게 일라이의 집에 들어갔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얀 원피스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며, 마치 새의 날개처럼 펄럭였다.
 
"아드리안 아가씨!" 일라이의 목소리가 아침 거리에 울렸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조안과의 긴장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달려와 준 것까지.

거리의 사람들이 그들을 힐끗거리며 바라보았다. 왕립도서관의 유명한 사서가 아름다운 아가씨를 쫓아가는 모습이 꽤나 이채로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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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앞 번화가를 벗어나자 거리가 한산해졌다. 일라이의 발걸음이 페이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세 번째로 그녀를 부르는 일라이의 목소리가 텅 빈 거리에 울렸을 때, 페이는 결국 걸음을 멈추고 홱 뒤를 돌아보았다.

너무 급하게 멈춰선 탓에 그들의 거리가 생각보다 가까워졌다. 일라이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친 페이는 당황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미, 미안해요! 제가... 그러니까..." 페이는 횡설수설했다.

"아침에 새소리가 들려서... 아니, 검은 고양이가 창문을...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 그녀의 말은 점점 더 엉켜갔다.

붉은 곱슬머리가 그녀의 상기된 뺨을 가렸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당황한 모습이었다.
 
일라이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조용한 거리에 울렸다. 푸른 눈동자가 즐거움으로 반짝였다.
 
페이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둘 사이로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그 침묵은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도서관에... 가보시겠습니까?" 일라이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마침 오늘은 새로 들어온 책들도 있고..."
 
페이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나란히 도서관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아침 햇살이 거리를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일라이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정말 감사합니다. 조안 님과는 늘 불편한 사이라..."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아드리안 아가씨 덕분에 한결 수월했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 그리고..." 일라이가 잠시 머뭇거렸다. "집에 들어오신 것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저..."

페이의 존재가 주는 이상한 편안함 때문일까. 그녀가 자신의 집에 들어갔던 것조차 이제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게... 일라이 씨가 곤란해하시는 걸 볼 수가 없었어요." 페이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거리의 상인들이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특히 빵집 아저씨는 늘 까칠하기만 하던 일라이가 누군가와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신기한 듯했다.
 
"저 차가운 책벌레도 저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먼." 빵집 아저씨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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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도서관으로 돌아왔을 때, 대출대에 있던 사브리나가 둘을 발견하고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본 일라이는 귀끝이 붉어졌다.
 
"아드리안 아가씨,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서둘러 페이를 신간 서적 서가 쪽으로 안내했다.
 
높은 천장까지 이어진 백색 대리석 기둥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3층 높이의 천장과 나선형 계단, 우아한 곡선의 책장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곳곳에 아늑한 독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푹신한 벨벳 소파와 원목 테이블, 그리고 곳곳에 놓인 크리스털 화병에는 신선한 꽃이 꽂혀있었다.

"여기 보세요." 일라이는 페이를 창가 쪽으로 안내했다. 커다란 아치형 창문 너머로 왕궁의 첨탑이 보였다.
 
"이 자리에서 책을 읽으면, 마치 동화 속 성에 있는 것 같죠." 그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애정이 묻어났다.

"아, 그리고 이쪽은..."

일라이가 설명을 이어가려는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사브리나의 의미심장한 웃음소리에 그의 귓가가 붉어졌다.

'제발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페이는 경이로운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창가에는 편안한 독서용 의자들이 놓여있었고, 황동 독서등은 따스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2층에는 귀족들이 자주 찾는 희귀본들이 있고, 3층은..." 일라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옛날 동화책들이 있거든요."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일라이는 자신도 모르게 평소의 차가운 표정이 아닌,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페이는 일라이의 설명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저 구석 창가의 소파가 일라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라는 것, 점심시간이면 햇살 아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저녁에는 창가에서 허브티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까지. 

하지만 그녀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예요." 일라이가 창가 쪽 소파를 가리켰다. 페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쪽으로 향했다. 

창문을 나누는 창틀 위에는 작은 방석이 놓여있었다. 그녀의 방석. 삐삐일 때 늘 앉아있던 그 자리였다.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인간의 모습으로 그와 이렇게 도서관을 둘러보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저기 봐요, 창 너머로 보이는 저 탑..." 일라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페이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도서관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삐삐일 때도, 지금도, 그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창틀 위의 방석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며, 페이는 작게 미소 지었다. 두 개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행복으로 다가왔다.

"3층으로 올라가면 희귀 고서관이 있어요. 보존 상태가 좋은 책들만 엄선해서..." 일라이가 나무 계단을 오르며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아, 맞아요. 일라이 씨는 이 시간쯤이면 허브티를 마시곤 하시죠? 캐모마일을..."

페이가 말하다가 순간 얼어붙었다. 삐삐일 때 매일 보던 광경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해버린 것이다. 일라이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셨나요?" 그의 목소리에는 놀람이 묻어있었다. 

페이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애쓰며 재빨리 대답했다. 

"아, 그게... 일라이 씨 집에서는 늘 허브차 향이 나길래... 도서관에서도 즐기시지 않을까..." 페이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일라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지금이 딱 그 시간이네요." 그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혹시 함께 차 한잔 하시겠어요? 고서를 둘러보시기 전에..."

페이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곱슬거리는 붉은 머리카락이 계단 위로 스며드는 햇살에 반짝였다. 일라이는 문득 이 순간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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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는 페이와 일라이가 3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안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조안은 평소와 달리 심각한 표정이었다.

"저 아가씨가 정말 아드리안 백작가의 그 딸이 맞나?" 조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브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드리안 가문의 외동딸이죠. 귀족들 사이에선 유명한 이야기예요."

"하지만 이상하지 않나? 아드리안가의 딸이라면 왕실 연회에도 자주 모습을 보였어야 할 텐데..." 

조안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왕족들만이 종종 그녀를 봤다고 하죠."

사브리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가씨가 집에 잘 있지 않아서라고 해요. 자유로운 영혼이라나... 부모님 허락 하에 왕국을 여행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갔다. "그래도 이상하죠.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서 우리의 까칠한 일라이와 이렇게 가까워지다니..."

조안은 고개를 저었다. "난 저 책벌레가 마음에 들지 않아. 평민 주제에..." 

그의 말에 사브리나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조안, 그만하세요. 신분 타령은 이제 지겹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는 잠시 멈추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일라이와 페이의 웃음소리가 도서관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하긴... 아드리안가의 외동딸이라...제법 괜찮은 상대인데." 조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왕실과도 친분이 있는 상위 귀족가문이지. 게다가 저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라니."

사브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짧은 적발이 오전 햇살에 은은하게 빛났고, 보조개가 깊게 패인 미소는 따스했다. 

"조안, 당신답지 않게 구네요. 평소엔 귀족 아가씨들을 피하시더니..." 그녀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질책이 담겨있었다.

"그야... 이번엔 다르죠." 조안이 능글맞게 웃었다. 

사브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우아한 목선이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향수 향이 퍼졌다. 

"그만두세요. 린든 군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는데, 당신이 방해하면 안 돼요."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녀의 말에 조안이 잠시 움찔했다. 사브리나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의 우아한 자태는 마치 가을 햇살처럼 부드럽고 포근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그가 마지못해 물러섰다. 사브리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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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휴게실의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 오전의 햇살이 두 사람을 포근하게 감쌌다. 일라이는 페이를 위해 메리골드 티를, 자신은 평소처럼 케모마일 차를 준비했다. 

그들은 잠시 편안한 침묵 속에서 차의 향을 음미했다.

시계를 확인한 일라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고서 열람실에 '환자'가 있네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페이가 궁금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환자라뇨?"

"네, 어제 어린이 방문객이 실수로 찢어뜨린 책이요. 아이들은 책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법을 아직 잘 모르거든요." 

일라이의 목소리에는 책을 아끼는 마음과 동시에 아이들을 이해하는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전 괜찮아요.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니까요."

페이는 그의 말에 감동했다. 삐삐였을 때도 늘 느꼈지만, 까칠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일라이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책을 고치는 건 어렵지 않나요?" 페이가 물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이런 일은 자주 있어요. 특히 아이들이 많이 찾는 동화책들은요." 

"실은 이런 작업이 꽤 즐겁답니다. 마치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것 같거든요."

"이쪽으로 오시죠." 일라이는 3층 한켠에 있는 작은 작업실로 향했다. 그의 팔에는 낡고 찢어진 동화책들이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작업실 문을 열자 은은한 가죽 향과 종이 냄새가 섞인 독특한 향이 풍겼다. 창가에는 오래된 작업대가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각종 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혹시... 보고 싶으신가요?" 일라이가 수줍게 물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책을 치료하는 과정이요. 제가 주로 하는 일 중 하나거든요." 

페이의 눈이 반짝였다. 삐삐였을 때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그의 작업을, 이제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니.

"네! 정말 보고 싶어요." 페이가 기쁘게 대답했다. 

일라이는 작업대 옆에 있는 의자를 빼주었다. 그가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책을 펼치자, 페이는 그의 섬세한 손놀림에 시선을 빼앗겼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일라이의 금발을 비추었고, 그의 진지한 표정이 평소보다 더 빛나 보였다.

일라이는 작업대 위에 훼손된 동화책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먼저 책의 전반적인 상태를 파악해야 해요." 그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죽으로 된 표지는 모서리가 닳았고, 책등의 홈이 느슨해져 있었다. 내지는 몇 군데 찢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 책은 '용감한 기사와 작은 용'이네요." 일라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예요." 그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표지 안쪽의 면지를 살폈다. 

"면지를 새로 붙여야 할 것 같아요. 찢어진 페이지도 접합해야 하고..."

페이는 일라이의 작업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책상 멀리 놓인 물풀이 필요할 것 같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물풀을 가져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일라이가 수줍게 웃으며 받았다. 그의 손끝은 언제나처럼 섬세했다. 

찢어진 페이지를 정교하게 맞추고, 얇은 한지를 덧대어 보강하는 모습은 마치 예술가 같았다.

페이는 이런 모습을 이제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삐삐였을 때는 늘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일라이의 진지한 표정, 책을 다루는 섬세한 손길, 그리고 가끔 흘리는 미소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압착기로 눌러주면 되겠네요." 

일라이가 작은 나무 압착기를 꺼내들었다. 책을 조심스럽게 놓고 나사를 돌리자, 균일한 압력으로 표지가 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풀이 잘 마르고 책의 형태가 예쁘게 유지돼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권의 동화책을 더 수리했다. 

'용감한 기사와 작은 용', '숲속의 요정과 반짝이는 별', '달빛 정원의 비밀'... 각각의 책들이 일라이의 손길을 거쳐 새 생명을 얻어갔다. 

페이는 그의 섬세한 손놀림과 진지한 표정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 벌써 이런 시간이네요." 일라이가 놀란 듯 시계를 보았다.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책을 치료하다 보면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죠." 

일라이가 수줍게 웃자 페이도 따라 미소 지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책이 치료되는 걸 보는 게 신기했어요." 페이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일라이는 흰 장갑을 벗으며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보고 싶으시다면..." 그의 말끝이 흐려졌다.

"혹시... 다음엔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페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아드리안가 사람이니, 이런 작업은 자신 있는데요. 물론 일라이 씨처럼 섬세하진 못하겠지만요." 

그녀의 칭찬에 일라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그게..." 일라이는 당황한 듯 손장갑을 만지작거렸다. 

"아드리안가의 영애께서 이런 일을..."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지만, 페이의 미소를 보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엔 함께 하시겠어요?"

"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페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저택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오늘 하루는 특별했다. 일라이의 섬세한 손길로 책을 치료하는 모습, 그의 진지한 표정, 수줍은 미소... 

순수한 청색 잉크가 양피지에 스며들듯... 오늘의 기억이 그녀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창밖으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 아래, 페이는 일라이의 작업실을 나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입가에는 미소가 맴돌았다.

오늘도 마음속 한 페이지가 일라이와의 소중한 추억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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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선 더 묘사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하지만 또 나올지도 몰라요 📖 💖

ㅋㅋㅋ 이런 여주도 재밌네요. 자기가 뭐 잘못하고 있는지 모룸

일라이가 괜찮데요. 넘어가주세요.

 
 

 
다음편!

일라이 린든 (5) Beloved Bird

 

 

 

일라이 린든 뤼튼 페이지 @예리엘

일라이 린든 | 뤼튼 캐릭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