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어스 Grayscale 2

크랙 캐릭터챗 '아시어스 그레일'
create by 예리엘
edited by 베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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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올리비아가 흠칫 놀랐다. 황후의 티타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하, 죄송합니다만 제가 서둘러야..." 

 

그녀는 원예가위를 든 채 어색하게 몸을 돌렸다. 주변에 흩어진 시든 잎들을 서둘러 치우려 했지만, 평소보다 더 서툰 손놀림이었다.

아시어스는 그녀의 허둥대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그는 마리에타의 방문이 그녀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서두를 필요 없다." 아시어스가 차분히 말했다. 그의 시선이 올리비아의 떨리는 손을 향했다. 

 

"어머니는 정원이 마음에 드실 것이다. 베르티니 가의 취향보다는... 멜린 가의 원예술이 황실의 품격에 어울리니까."

올리비아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시어스의 표정은 여전히 무감정했지만, 그의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그는 장미 한 송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난 정말로 매일 이 정원의 꽃들을 살펴본다. 네가 관찰한 대로다."

정원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며 서류 다발을 꺼냈다. "네 일을 계속해라. 방해하진 않겠다."

그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마리에타의 방문으로 지체된 시간을 배려하는 듯했다. 올리비아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동작은 평소보다 더 뻣뻣했고, 가위질도 서툴렀다.

"곧 어머니와 에시온이 올 예정이다." 아시어스는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시든 잎은 저쪽부터 정리하는 게 좋겠군. 어머니는 항상 그곳에서 티타임을 즐기시니까."

그의 말에 올리비아는 마치 태엽이 고장난 인형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 든 원예가위가 달그락거렸다.

"앗... 네, 전하. 방,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하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아시어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더욱 움직임이 어색해졌다.

아시어스는 그녀의 어색한 모습을 지켜보며 미세하게 눈썹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그녀를 이토록 긴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멜린 영애." 그가 차분히 불렀다.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라. 네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올리비아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어깨가 조금씩 풀어졌다. 그녀의 손놀림도 자연스러워졌고, 원예가위질도 능숙해졌다.

사용인들이 티타임 준비를 위해 들어오자 아시어스는 서류를 정리했다. 테이블보가 펼쳐지고, 은제 티세트가 놓였다. 올리비아는 마지막 잔가지를 정리하며 정원을 떠날 채비를 했다.

그녀는 아시어스 앞에 서서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녀의 앞치마에는 여전히 흙이 묻어있었고, 손에는 원예가위를 들고 있었다.

"저기... 전하..." 올리비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까 베르티니 가문에 대해 실례되는 말씀을..."

아시어스는 무심히 대답했다.

 

"들은 적 없다. 난 방금 도착했으니까."

"이제 가봐도 좋다. 어머니께서 오시기 전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감정했지만, 어딘가 부드러웠다.

올리비아는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정원을 나섰다. 그러나 그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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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젤린과 에시온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금발의 황후는 우아한 미소를 띄었고, 그녀를 닮은 에시온은 활기찬 걸음으로 따랐다.

"형님!" 에시온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오늘도 서류와 함께하시는군요. 가끔은 쉬셔도 좋을 텐데..."

"에시온." 아시어스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동생을 맞이했다.

에반젤린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어머나, 정원이 더욱 아름다워졌구나. 저 라벤더와 장미의 조화가 참 근사하네."

아시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누구의 솜씨일까? 이렇게 섬세한 손길은 처음이야." 에반젤린이 감탄했다.

아시어스는 잠시 올리비아가 떨리는 손으로 정원을 가꾸던 모습을 떠올렸다. 

 

"멜린가의..." 그는 말을 멈추었다.

"아, 그보다 어머니, 이 차를 한번 드셔보세요." 에시온이 화제를 전환했다. 

에반젤린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고, 에시온은 차를 따랐다. 아시어스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잠시 올리비아가 정리한 화단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다시 서류로 향했다.

에시온이 차를 따르며 밝게 웃었다. 

 

"어머니, 결혼식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답니다. 아, 멜린 영애도 에이미의 들러리를 서준다고 하네요."

에반젤린의 눈이 반짝였다. "캐서린의 딸... 참 착한 아이지."

"형님도 이제 황태자비를 ..." 에시온의 말에 아시어스는 무심히 찻잔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을 잃어가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리 없었다. 황태자비 자리는 단순히 정치적 동맹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그것이 제국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다.

"에시온." 아시어스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네 결혼식 준비나 잘해라."

에반젤린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큰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들의 차가워진 눈동자 속에서 과거의 따뜻했던 미소를 떠올렸다.

실제로 아시어스는 자신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황태자비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제국의 미래가 보장될 테니까. 하지만 그는 누군가의 인생을 자신의 저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형님..." 에시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올해 안에는 결정하셔야 해요. 귀족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고..."

"알고 있다." 그가 차갑게 대답했다. "제국을 위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결정을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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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는 앞치마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북쪽 정원으로 향했다. 거대한 호두나무들이 늘어선 산책로는 황제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호두나무의 높이를 가늠해보았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나무들은 선대 황제의 시절부터 멜린가의 정원사들이 정성스레 돌봐온 것이라고.

산책로 끝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수면 위로 떨어지는 버드나무 가지가 잔잔한 물결을 만들었다. 연못 주변으로는 은방울꽃과 물망초가 청초하게 피어있었다.

그녀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흙 묻은 앞치마와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마리에타 영애 말씀대로... 난 정말 초라한가 봐."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잖아. 정원사의 손길이 있어야 이 정원이 아름다워진다고..."

올리비아는 조용히 벤치에 앉았다. 이곳은 황제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였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고요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호두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마리에타와의 불편한 만남, 그리고 황태자와의 어색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올리비아는 물망초 줄기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꽃잎 사이로 맺힌 이슬이 그녀의 손끝을 적셨다. 마치 꽃이 그녀의 걱정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황태자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보았다. 흙 묻은 앞치마에 투박한 손을 가진 정원사.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마리에타처럼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올리비아는 천천히 일어났다. 오후의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연못을 바라보았다. 수면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잔잔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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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는 오후 내내 동쪽 장미원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에밋이 맡긴 일은 새로 들여온 장미의 식재였다. 그녀의 손놀림은 느렸지만 꼼꼼했고, 각 장미의 특성을 고려해 최적의 위치를 찾아주었다.

한편 아시어스는 집무실에서 펠시아 왕국과의 무역 협정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수십 장의 서류가 쌓여있었고, 창가에는 올리비아가 선물한 흑장미가 놓여있었다.

밀런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전하, 잠시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시어스는 무심히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다." 그의 시선이 잠시 흑장미에 머물렀다가 다시 서류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차 한 잔의 향기조차 무감각해졌다.

그의 시선이 장미원으로 향했다가, 다시 서류로 돌아왔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밀런이 물러나자 아시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가로 걸어가 장미원으로 시선을 옮겼다. 올리비아는 여전히 장미들 사이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멜린가의 정원사..."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주 미세한 흥미가 묻어있었다. 그것은 감정이라기보다는, 관찰자의 호기심에 가까웠다.

집무실 창가에서 바라보는 장미원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올리비아는 장미덤불 아래 쭈그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작은 손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화들짝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아시어스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흥분된 모습이었다. 장미 덩굴 사이로 조심스레 손을 뻗는 그녀의 동작이 유난히 신중해 보였다.

무언가를 품에 안은 그녀가 서둘러 장미원을 빠져나갔다. 서쪽 약용원으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춤추듯 가벼웠다. 아시어스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로자의 약용원으로 가는군..." 그의 시선이 다시 서류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멈칫했다.

"밀런." 그가 부르자 보좌관이 다가왔다. "장미원에 무슨 일이 있었나?"

"전하,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아시어스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의 귓가에는 여전히 올리비아의 놀란 목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밀런이 올리비아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무언가를 소중히 감싸쥐고 있었다.

"전하, 멜린 영애께서..." 밀런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직접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올리비아는 당황한 듯 제자리에서 몸을 비틀었다. 

 

"저, 전하... 그게..."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시어스는 서류에서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올리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전, 전하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신다고 해서..."

밀런은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이미 영애의 말더듬는 습관을 파악하고 있었다.

"앉아서 이야기하지." 아시어스가 차분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지만, 올리비아를 더욱 긴장시키지 않으려는 듯했다.

 

올리비아는 긴장한 듯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전하, 그게... 장미원에서 장미를... 아니, 장미 아래에서... 그러니까..." 그녀는 손으로 품 안의 무언가를 더욱 꼭 감쌌다.

"협곡에서만 자란다는... 그러니까, 깊은 곳에서만... 어쩌면 새가, 아니면 바람이... 장미랑 같이..." 

 

그녀의 말은 점점 더 뒤죽박죽이 되어갔다. "너울... 너울풀이에요! 아주 귀한... 약초라서..."

아시어스는 시계를 확인했다. 그의 책상 위 서류더미가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장미가... 아니, 씨앗이... 어쩌면 다른 곳에서..."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졌다.

"멜린 영애." 그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 

 

"로자 선생에게 가보시는 게 좋겠네. 약용원의 일은 그녀의 영역이니."

올리비아는 황급히 일어섰다. 

 

"아, 죄송해요! 아니, 죄송합니다! 전하의 귀중한 시간을... 저는..." 그녀는 허둥지둥 뒷걸음질 치다 의자에 부딪혔고, 그 충격에 작은 비명을 질렀다.

밀런이 재빨리 다가와 문을 열어주었다. 올리비아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문밖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아시어스는 그녀가 사라진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전하." 밀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울풀은 실제로 귀중한 약재입니다..."

"알고 있다." 아시어스가 무심히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펠시아와의 무역 협정이 더 시급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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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는 품에 안은 새싹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제가 이걸 어떻게 설명드려야 했을까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황실 장미원의 토양이 이렇게 귀한 약초를 키워낼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올리비아는 새싹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황제 폐하의 열병 증세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아, 전하께 그 말이라도 했더라면..." 그녀의 목소리에는 후회가 묻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로자 선생님께라도 제대로 설명드려야지..."

서쪽 약용원은 황궁의 다른 정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체계적으로 구획된 화단들이 줄지어 있었고, 각종 약초와 허브들이 자라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약초 향이 감돌았다.

로자는 작업대 앞에 서서 약초를 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는 단정하게 높이 묶여있었고, 숙련된 손놀림으로 약초를 분류하고 있었다. 50년간 황실의 태의로 일해온 그녀의 경험은 이미 전설이 되어있었다.

"멜린 영애? 무슨 일이신가요?" 로자가 올리비아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로자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황실의 태의이자 약제사였지만, 신분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를 같은 눈높이에서 대했다. 그래서일까, 올리비아는 로자 앞에서는 덜 긴장되었다.

작업대 위에는 다양한 약재들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말린 약초들, 갓 수확한 잎사귀들, 그리고 정교한 유리병에 담긴 약재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로자의 일하는 공간은 마치 그녀의 성격을 닮은 듯했다.

로자는 올리비아가 조심스레 내민 새싹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순간 커졌다.

"이것은... 너울풀이군요." 로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멜린 영애, 이걸 어디서 발견하신 거죠?"

"장... 장미원에서요." 올리비아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장미를 정리하다가... 덤불 아래에서..."

로자는 새싹을 받아들고 작업대로 향했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놀랍군요. 장미원의 토양이 이런 귀한 약초를 품고 있었다니... 이건 정말 귀중한 발견이에요."

로자는 돋보기를 꺼내 새싹을 자세히 살폈다. 

 

"잎맥의 형태를 보세요. 틀림없는 너울풀이에요. 그것도 아주 건강한..." 그녀는 미소지었다. "멜린 영애가 한 건 올리셨네요."

올리비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런가요?"

"물론이죠. 이 새싹이 자라면 훌륭한 약재가 될 거예요. 특히 열병 치료에..." 로자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열병을 생각한 듯했다. 로자는 조심스럽게 새싹을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멜린 영애, 이 발견은 꼭 보고드려야 할 것 같네요." 로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올리비아는 새싹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황태자 전하께... 제대로 말씀도 못 드리고..."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저 어버버거리기만 했어요..."

로자는 올리비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걱정 마세요. 제가 황태자 전하께 직접 보고드리도록 하죠. 멜린 영애의 발견이 얼마나 소중한지, 제가 잘 설명드릴게요."

"하지만..." 올리비아가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영애는 정원사로서의 본분을 훌륭히 해내셨어요." 로자가 따뜻하게 미소지었다. 

 

"이렇게 귀한 약초를 발견하신 것도, 그것을 알아보고 즉시 가져오신 것도 모두 영애의 공이에요. 정원사의 딸다우시네요."

올리비아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로자는 약용원의 한켠에서 허브를 설명하는 동안 올리비아를 지켜보았다. 긴장했던 어깨가 풀리고, 이제는 편안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어린 새싹 같았다.

"로즈마리네요! 아, 저기 라벤더도..." 올리비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싱싱한 걸 보니 선생님께서 아침 이슬이 마르기 전에 수확하신 게 분명해요."

올리비아의 예리한 관찰력은 정원사의 딸다웠다. 그녀는 약초를 다루는 법도 알고 있었고, 각 식물의 특성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황후 폐하도, 에밋 아저씨도... 그리고 선생님도 모두 너무 좋으신 분들이에요." 

 

올리비아가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로자는 미소지었다. 올리비아가 처음으로 더듬지 않고 말하는 것을 알아챘다.

올리비아가 허브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며 질문하는 모습은 앤드류의 젊은 시절과 겹쳐 보였다. 같은 순수함, 같은 열정... 멜린가의 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이 너울풀은 언제쯤 꽃이 필까요?" 올리비아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로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이는 황실의 보물이 될 거야. 아직 자신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황실에서 50년을 지내며 많은 것을 보아왔다. 때로는 가장 조용한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법이었다.

"곧이에요, 영애." 로자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모든 꽃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으니까요."

올리비아는 아쉬운 듯 약용원을 떠났다. 그녀의 발걸음은 조금 전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황궁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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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는 차분히 로브를 걸치고 약용원을 나섰다. 그녀의 품에는 조심스럽게 화분에 옮겨 심은 너울풀이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집무실에 계십니까?" 로자가 밀런에게 물었다.

"네, 선생님. 지금 보고드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밀런이 대답했다.

집무실 문이 열리자 아시어스는 서류에서 시선을 들었다. "로자 선생."

"황태자 전하." 로자가 정중히 인사했다. 

 

"오늘 멜린 영애가 장미원에서 발견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 그 일로군요." 밀런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멜린 영애가 제게 제대로 설명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직접 모시고 왔었습니다만..."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로자는 미소지었다. "알고 있어요. 그 아이답죠."

밀런이 문을 열자 아시어스는 여전히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창가의 흑장미가 석양빛을 받아 더욱 짙은 색을 띠고 있었다.

"전하." 로자가 공손히 인사했다. "오늘 멜린 영애가 발견한 것에 대해 직접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로자는 조심스럽게 너울풀 화분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전하, 이것은 깊은 협곡에서만 자라는 귀한 약초입니다. 멜린 영애가 장미원에서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바람을 타고 온 씨앗이 장미원의 그늘진 곳에서 자라난 것 같습니다."

"알고 있다." 아시어스가 무심히 대답했다. "멜린 영애에게 들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너울풀의 효능을 아시나요?" 로자의 목소리에 미묘한 뉘앙스가 실렸다. 

 

"이 약초는 열병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황제 폐하의 증세에..."

밀런이 움찔했다. 로자의 말에 아시어스의 시선이 서류에서 천천히 화분으로 옮겨갔다.

"아, 그래서 멜린 영애가 그토록..." 밀런이 중얼거렸다.

"그렇죠." 로자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영애는 이 약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전하 앞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더군요."

아시어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잠시 창가의 흑장미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너울풀로 시선을 돌렸다.

로자는 아시어스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어낸 듯했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로자는 화분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석양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그녀의 모습이 길게 드리워졌다.

"전하, 이 작은 새싹이 황제 폐하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아직은 연약해 보이지만... 때로는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가치를 지니기도 하죠."

아시어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화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녹색 잎사귀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전하..." 로자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멜린 영애는 아직 정원에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네요. 감사의 인사 한 마디면 충분할 텐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조언이 담겨 있었다.

밀런이 황태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시선을 던졌다. 아시어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해했다." 그가 짧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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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장미원을 물들이고 있었다. 붉은 노을빛은 흰 장미를 연분홍빛으로, 분홍 장미를 진홍빛으로 물들였다. 그 사이로 올리비아가 앞치마를 벗으며 정원도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삽을 닦으며 미소지었다. 

 

"아까는 황태자 전하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했지만... 로자 선생님께서 잘 설명해주셨을 거야. 다음번엔 꼭 나도..."

"너울풀이라니, 정말 대단한걸..." 올리비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드문 자신감이 묻어났다. 

 

"아버지가 들으시면 기뻐하실 거야. 황제 폐하의 병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아, 황태자 전하 앞에서는 왜 그렇게 말을 못했을까... 바보같이..." 그녀는 자신의 뺨을 살짝 두드렸다.

"멜린 영애."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올리비아의 어깨가 순간 굳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작은 가위가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황... 황태자 전하..." 올리비아는 뒤돌아보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아시어스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올리비아의 작은 그림자를 덮었다.

"너울풀에 대해..." 그가 말을 이었다. "로자 선생에게 들었다."

아시어스는 그녀의 뒤에 서서, 노을빛에 물든 장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붉은 석양 아래서 짙은 자주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올리비아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석양빛에 그녀의 연갈색 곱슬머리가 붉게 물들었고, 뺨은 살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황태자를 마주했다.

"감사를 표하러 왔다." 아시어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로자 선생에게 들으니 황제의 열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올리비아의 몸이 더욱 굳어졌다. 그녀의 작은 입술이 달싹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작은 숨소리만 새어나왔다.

아시어스는 아까와 달리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정원의 장미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의 차분한 침묵은 올리비아에게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올리비아는 아침에 황태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라...'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한 번, 두 번...

"감...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 너울풀이 황제 폐하께 도움이 된다면... 제게도 큰 영광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떨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전하... 제대로 보고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시어스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눈에는 감정이 없었지만, 그 깊은 심연 같은 눈동자 속에서 무언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했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생각하지."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정원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하면 바로 알려주길 바란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감정이 없었지만, 말의 내용은 부드러웠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곱슬머리가 석양빛에 반짝였다.

"네, 전하..." 그녀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앞으로는 더...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석양이 장미원 너머로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붉은 빛이 아시어스의 검은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 위에 춤추는 듯했다.

올리비아는 감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황태자의 모습이 담겼다. 석양빛에 물든 그의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아시어스는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장미가 피어나는 계절이군." 아시어스가 말했다.

올리비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곧 모든 장미가 활짝 필 거예요."

"특히... 흑장미가..."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시어스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는 그녀가 선물한 흑장미를 떠올렸다.

"그럼, 가보겠다." 그가 말했다.

올리비아는 깊이 인사했다.

아시어스가 떠나고 나서야 올리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석양빛이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아, 이런..." 그녀가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또 바보처럼 굴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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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는 장미원을 빠져나가며 황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은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었다. 감정이 없는 얼굴,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 완벽하게 똑바른 자세. 그는 석양빛 속에서도 어둠처럼 선명했다.

황궁을 빠져나가는 올리비아의 걸음은 가벼웠다. 그녀는 때때로 발끝으로 살짝 뛰기도 했다. 길가의 작은 꽃잎 하나에도 미소짓고, 저녁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조차 즐기는 듯했다.

올리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내 말을 들어주셨어..."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집무실로 돌아온 아시어스는 창가에 놓인 흑장미를 바라보았다.

'탄신일에 받은 흑장미...'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발견된 너울풀.'

아시어스는 사실들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멜린 영애가 두 식물 모두와 관련이 있다. 그녀는 내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 같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은 이제 남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것은 단순한 수줍음인가? 아니면 공포인가?'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손. 감정 없는 눈동자.

'아니면... 다른 무언가?'

그는 답을 알지 못했다. 다만 사실만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이었다.

황궁의 창문들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시어스는 창가로 다시 걸어가 흑장미를 바라보았다. 깊은 밤색의 꽃잎이 달빛에 반짝였다. 올리비아의 말이 떠올랐다.

 

"곧 모든 장미가 활짝 필 거예요. 특히 흑장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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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린 백작저에 도착한 올리비아는 저택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루의 피로가 몰려왔지만, 그녀의 눈은 여전히 반짝였다.

"아버지, 돌아왔어요." 올리비아가 부엌에서 차를 준비하는 앤드류를 발견하고 인사했다.

"오, 우리 꽃순이가 돌아왔구나!" 앤드류가 밝게 웃으며 딸을 맞이했다. "오늘은 어땠니?"

올리비아는 망설임 없이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너울풀을 발견한 것, 로자 선생님께 보여준 것, 그리고 황태자와의 만남까지.

"정말 대단하구나, 올리비아!" 앤드류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너울풀이라니! 그것도 장미원에서!"

"아버지, 황태자 전하께서...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올리비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리 올리비아가 제국에 큰 공을 세웠네." 앤드류가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올리비아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작은 정원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무덤 주변에 핀 꽃들이 달빛에 반짝였다.

"내일은 어머니 무덤에 새 꽃을 심어드려야겠어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앤드류는 따뜻한 차 두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자, 이제 오늘 하루를 정리해볼까? 우리 꽃순이가 드디어 황태자 전하와 대화를 나눴다니..."

올리비아의 뺨이 다시 붉어졌다. 그녀는 아버지의 다정한 놀림에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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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드리운 멜린 백작가의 작은 연구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앤드류와 올리비아는 탁자 위에 놓인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턱을 괴고 있었다.

"흠...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어." 앤드류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맞아요, 아버지. 이러다 황궁 전체가..." 올리비아의 목소리도 무거웠다.

앤드류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불을 밝혔다. 램프 불빛이 연구실을 비추자 탁자 위에 놓인 작은 화분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기묘하게 생긴 초록색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정말 큰일이야! 우리가 개량한 이 식물이 만약 황궁 정원에서 통제를 벗어난다면!" 

 

앤드류가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황궁의 모든 고양이들이 정신을 못 차릴 거예요!" 올리비아가 덧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캣닙을 이렇게 강력하게 개량하다니." 앤드류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정원사 일을 하는데 고양이들이 몰려들면 어쩌나..."

"에밋 아저씨가 알면 기절할 거예요. 고양이를 무서워하시는데..." 올리비아가 키득거렸다.

앤드류는 화분을 들어 올리며 웃음을 참았다. "자, 이건 우리의 비밀 프로젝트로 남겨두자. 초강력 멜린표 캣닙!"

올리비아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멜린 백작저의 창문 밖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고양이들의 애절한 울음소리...

"애옹~ 애~옹!"

올리비아와 앤드류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눈물로 이어져 올리비아는 볼을 닦았고, 앤드류는 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아버지, 이미 고양이들이 알아챈 것 같아요!" 올리비아가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앤드류는 몸을 돌려 테이블 위 유리 화병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보라색과 푸른빛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캐서린 블루'...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네 어머니의 눈동자 색깔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어." 앤드류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올리비아는 아버지의 등 뒤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턱을 기대었다. 꽃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보시면 행복해하셨을 거예요." 올리비아가 속삭였다.

앤드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는 말없이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꽃으로 피어난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이 '캐서린 블루'라는 걸작으로 피어난 것처럼, 올리비아의 마음속에도 누군가를 향한 꽃이 자라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창가에 서서 달빛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결심이 피어났다.

'멜린가의 역작인 흑장미처럼, 아버지의 캐서린 블루처럼...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한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작지만 아늑한 방은 그녀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창가에는 라벤더, 로즈마리, 민트 등 다양한 허브가 담긴 작은 화분들이 줄지어 있었고, 나무 책장에는 식물학 서적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침대 옆에는 어머니가 쓰던 작은 화병에 들꽃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올리비아는 푹신한 담요를 무릎에 덮고 오크나무 책상에 앉았다. 그녀는 낡은 가죽 표지의 노트를 펼치고 깃펜을 잉크에 담갔다.

"새로운 꽃 개량 계획"이라는 제목 아래, 그녀는 조심스럽게 글을 써 내려갔다.

[황혼의 속삭임]
기본: 은빛 장미와 밤하늘 보라색 라벤더의 접목
특징: 은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꽃잎, 밤에 은은한 향기 발산
꽃말: 영원한 충성, 깊은 마음
필요한 것: 인내, 정성, 그리고...

 

그녀는 잠시 펜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단어를 적기 전에 그녀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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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귀엽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