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리우 (1) 백홍상연

뤼튼 캐릭터챗 '단리우'
create by 예리엘
edited by 베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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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0년 전, 인간들이 다스리는 '지월국'과 여우 수인, 호족(狐族)이 다스리는 '호월국'은 치열한 혈전을 벌였다. 두 나라는 현재 휴전 협정을 맺었으나, 종족 간의 갈등은 여전히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호족의 왕 '요운'과 지월국의 여왕 '세화'는 진정한 평화를 염원했지만, 수백 년에 걸쳐 쌓인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수업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호월국의 수도 설휘── 호족들 사이에서도 명문가로 손꼽히는 단씨 가문의 저택, '명휘각'에서는 가난한 호족 아이들에게 무료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학문을 가르치는 이는 다름 아닌 단씨 가문의 가주이자, 호월국의 현 수장을 보좌하는 '단리우'였다. 아이들은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우는 익숙한 동작으로 책을 덮으며 한쪽 손으로 접선을 펼쳐 들었다. 창 너머로 스며든 부드러운 석양빛이 그의 백발을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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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월국. 북방의 험준한 산맥과 광활한 숲으로 둘러싸인 이 나라는 여우 수인인 호족들이 다스리는 왕국이었다.

 

호족들은 대부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머리 위로는 여우 귀가, 뒤로는 여우 꼬리가 나 있었다.

 

흰 여우와 검은 여우의 피를 이어받은 호족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머리 위로는 뾰족한 귀가, 등 뒤로는 폭신한 꼬리가 드러나 있었다.

 

호월국의 수장 요운은 백호족으로, 그의 통치 아래 호월국은 지월국과의 평화를 유지하며 번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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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서당 창문 너머로는 명휘각의 웅장한 후원이 보였다. 목련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작은 연못에는 얼음이 살짝 얼어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 봄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는 시기였다.

경서당 안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앗, 기다려! 너희들 다 어디 가는 거야? 내가 준비한 꽃떡 아직 다 못 나눠줬는데!"

붉은 머리카락의 한 여성이 허둥지둥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외쳤다. 그녀의 손에는 분홍빛 꽃떡이 담긴 쟁반이 들려 있었다.

"이채 누나, 나 하나 더!" 작은 흑호 아이가 깔깔대며 손을 내밀었다.

"안 돼, 진호야. 한 명당 하나씩이라고 했잖아. 다른 친구들도 먹어야지."

"그럼 나 대신 누나 꼬리 만져볼게. 짧아서 귀여워!"

"야! 내 꼬리 가지고 놀지 마!"

경서당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채의 갈색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며 아이들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진호의 말에 빠르게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살짝 꿀밤을 먹였다.

"아야!" 진호가 이마를 문지르며 소리쳤다.

"어디서 감히 내 꼬리를 만지려고 해, 응?" 이채가 웃으며 진호를 피해 빙글빙글 돌았다.

경서당은 곧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다른 아이들도 이채의 꼬리를 잡으려 달려들었고, 그들은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경서당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채는 붉은 머리카락에 연갈색 눈동자를 가진 혼혈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백호족이었지만 그녀의 귀는 갈색빛이었고 유난히 짧은 꼬리가 그녀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경서당에서 잡일을 하며 글공부를 하는 그녀는 매번 문과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밝은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웃음소리가 경서당을 가득 채울 때, 미닫이 문이 조용히 열렸다.

 

긴 그림자가 드리우며 문턱에 서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단리우였다.

 

푸른 눈을 가진 그는 하얀 여우 귀를 곧게 세우고 서 있었다. 그의 긴 백발은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남색 관복과 호족 문양이 새겨진 접선이 그의 위엄을 더했다.

경서당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하나둘 멈춰 서서 리우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한 아이가 작게 속삭였다.

단리우는 호월국 수장 요운의 부관이자 단씨 가문의 가주였다. 615세의 백호족인 그는 차가운 눈빛과 긴 백발,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유명했다. 호족 아이들 사이에서는 '무서운 스승님'으로 통했다.

"이채. 경서당은 놀이터가 아닙니다." 리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 리우 님..." 이채는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죄송해요. 제가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다가..."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정리하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아이들은 리우의 말에 얼른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채는 마지막 남은 꽃떡을 리우에게 건넸다.

"먹어볼래요? 달지 않게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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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하나둘 작은 가방을 챙겨 경서당을 떠났다. 마지막 아이가 문을 닫자 리우와 이채만이 남았다. 리우가 꽃떡을 사양하려 했으나, 이채는 그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이거 정말 맛있어요."

"아니, 이채... 달지 않다고 해도 저는..."

리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채는 이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먹물이 튄 자리를 훔치고 있었다.

 

그녀의 짧은 갈색 꼬리가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렸다. 비록 허드렛일이었지만, 그녀는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가끔 귀가 쫑긋거리며 리우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 새끼 여우 같았다.

리우는 손에 들린 꽃떡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채는 늘 작은 일에도 열심이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노력했다. 그는 이채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봐왔다.

 

부모를 잃고 경서당에 들어온 혼혈 아이. 호족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드물었고, 양쪽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채는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리우는 그런 그녀의 강인함을 존중했다.

'또 시험에 낙방하면 실망할 텐데...'

이채가 바닥을 닦던 물수건을 곱게 접으며 슬쩍 리우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활발한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마치 궁중의 숙녀처럼 다소곳한 자세로 리우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연갈색 눈동자에는 여전히 장난기가 반짝였다.

"리우 님, 한 번만 드셔보세요. 정말 맛있을 거예요."

리우는 이채의 따가운 시선에 한숨을 내쉬며 꽃떡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는 달콤한 맛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담백한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번엔 진짜 달지 않게 만들었네요."

이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마치 봄날의 목련꽃처럼 밝게 빛나는 미소였다.

"와! 드셨네요!" 이채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리우 님이 제가 만든 꽃떡을 드셨으니... 제게도..."

이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리우는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이채가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항상 베푸는 쪽이지, 요구하는 쪽이 아니었다.

리우는 이채의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는 접선을 옆에 내려놓고 이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두 사람의 눈높이가 맞춰지자 리우의 푸른 눈동자가 이채의 연갈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저... 청연제에 가고 싶어요." 이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청연제라..." 리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월하궁에서 매년 봄에 열리는 청연제는 호족들의 축제였다.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이 축제는 호월국 전역에서 호족들이 모여 음악과 춤, 술과 음식을 즐기는 자리였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꽃을 피우는 요은화는 청연제의 상징이었다.

"3월 14일이면... 시험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글공부에 집중하셔야 할 때입니다." 리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채의 얼굴에 실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올해 청연제는 그녀의 생일과 겹치는 특별한 날이었다.

 

'리우 님은 내 생일도 모르는 걸까?' 하는 서운함이 스며들었다.

 

그녀의 귀가 풀썩 주저앉았고, 짧은 꼬리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알겠어요..." 이채의 목소리는 작게 가라앉았다.

리우는 그날이 이채의 생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채가 이번 시험에서도 낙방하고 실망할 것을 염려했다.

 

생일이라고 들뜬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가 또 떨어진다면, 그 상심이 얼마나 클지 리우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저녁에 제가 글공부를 봐드리겠습니다." 리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 시험은 반드시 합격하셔야 합니다. 3년 연속 낙방하면 다시 응시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기억하고 계시죠?"

리우는 그녀의 실망한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렸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 식사 후 경서당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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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가 경서당을 떠나자마자 이채는 접은 수건을 바닥에 철퍼덕 던졌다. 그녀의 짧은 꼬리가 불만스럽게 파닥거렸다.

"정말 너무해! 내 생일도 기억 못하면서..." 이채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수건을 다시 주웠다. 리우가 걱정하는 이유를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번 시험에 낙방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서기관의 꿈은 영원히 접어야 했다.

이채는 수건을 다시 곱게 접으며 생각했다.

 

'리우 님은 항상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너무 화내면 안 돼...'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목련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곧 화려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엔 꼭 합격해야지!" 이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의 귀가 다시 쫑긋 세워졌다.

경서당 바닥을 깨끗이 정리한 이채는 책상 위에 놓인 경전을 집어들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두어야 했다. 리우가 질문을 할 때 또 대답하지 못하면 안 되니까...

저녁이 되자 경서당은 적막에 잠겼다. 낮의 소란스러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어스름한 황혼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었다.

 

나무 바닥은 이채가 정성껏 닦아 반들반들 빛났고, 오늘 배웠던 경전들이 가지런히 책장에 정리되어 있었다.

이채는 경서당 앞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저녁 식사 대신 만두를 먹고 있었다. 그녀의 발은 공중에 흔들거렸고, 짧은 꼬리가 리듬감 있게 움직였다.

명휘각은 설휘 중심부에 위치한 단씨 가문의 웅장한 저택이었다. 청옥빛 기와와 하얀 벽이 특징인 이 저택은 넓은 후원과 여러 별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경서당은 단씨 가문의 후계자와 차기 수장을 교육하는 장소이자, 가난한 호족 아이들에게 무료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이채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서당에서 보냈다. 명휘각에 머무는 리우의 친족들과 하인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호족도, 인간도 아닌 그녀는... 이채는 그런 생각을 접고 발을 휘적거리며 만두에 집중했다.

"맛있다~"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우아하고 단정한 걸음걸이—틀림없이 리우였다. 월하궁에서 요운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 듯했다.

리우가 경서당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스승님~!" 이채가 만두를 재빨리 내려놓고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오늘 수업이 짧게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월하궁에서 오셨어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이채는 리우의 주변을 빙글 돌더니 그의 뒤에 서서 조심스럽게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제가 안마 좀 해드릴게요. 어깨가 많이 뭉쳤겠어요."

리우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이채의 꽤를 잘 알고 있었다.

 

수업을 피하려는 그녀의 작은 술책이었다. 솔직히 그는 그런 이채의 모습이 귀엽다고 느꼈지만,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았다.

"수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채의 손길이 그의 뭉친 어깨를 부드럽게 풀어주자, 리우는 무의식중에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요운의 명으로 월하궁에서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그것을 모두 검토하느라 목과 어깨가 뻐근했다.

"...5분만 허락하겠습니다."

이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작은 승리였다. 그녀의 짧은 꼬리가 기쁨에 차서 흔들거렸다.

"스승 님, 오늘은 무슨 일이 그렇게 많으셨어요? 평소보다 더 피곤해 보이시는데..."

리우는 이채의 안마를 받으며 눈을 살짝 감았다. 그는 평소 누구에게도 자신의 피로를 내비치지 않았지만, 이채 앞에서는 가끔 그 엄격한 가면이 벗겨지곤 했다.

"오늘은 수장님께서 지월국 사절단 방문 준비를 위한 서류를 검토하라 하셨습니다." 리우가 조용히 말했다.

 

"지월국의 세화 여왕이 직접 월하궁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이채의 손가락이 리우의 어깨를 부드럽게 누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채... 5분이 지났습니다. 이제 수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채가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리우는 단호했다. 그는 가볍게 어깨를 돌려 이채의 손길에서 벗어나 경서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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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호월지』의 인호전쟁 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부분이니 집중해주세요."

이채는 한숨을 내쉬며 리우를 따라 경서당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남은 만두 하나를 입에 쏙 넣고 책상 앞에 앉았다.

 

리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참았다. 이채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언제나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엄격한 스승의 모습을 유지해야 할 때였다.

"인호전쟁은 300년 전, 호월국과 지월국 사이에 벌어진 큰 전쟁입니다. 당시 호족의 수장이었던 시운 님과..."

리우의 목소리가 경서당에 울려 퍼졌다. 이채는 턱을 괴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이미 청연제로 향해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경서당에는 리우의 차분한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는 『호월지』 단락 단락을 조용히 읽어내려갔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고요했다.

"인호전쟁 당시 호족의 수장이었던 시운 님은 인간들의 불의한 침략에 대항하여..."

리우는 책에 집중한 나머지 이채의 상태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의 귀가 서서히 축 처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다.

 

이채는 최선을 다해 필기를 하려 했지만, 그녀의 글씨는 점점 흐트러지며 마치 지렁이가 기어간 듯한 형태로 변해갔다.

"그리하여 백설령 전투에서 호족군은 인간들의 매복을 피해..."

리우가 마지막 단락을 읽고 책을 덮었을 때, 그는 비로소 이채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책상에 이마를 박고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책상 위로 흩어져 있었고, 작은 코골이 소리가 경서당에 울려 퍼졌다.

리우는 한숨을 내쉬며 이채의 필기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정했던 글씨가 점점 흐트러져 마지막에는 그저 낙서처럼 보였다. 그는 조용히 책상에 다가가 이채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이채..."

하지만 이채는 미동도 없었다. 그저 더 깊은 잠에 빠져든 듯했다.

 

리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역시 류명에게 역사를 배울 때면 종종 졸았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그를 깨우지 않고 담요를 덮어주곤 했었다.

리우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이채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채를 부드럽게 안아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가 처음 거두어들였을 때의 어린아이처럼 가벼웠다.

이채의 작은 손이 리우의 옷자락을 꼭 쥐었다. 그녀의 숨결은 고르고 평온했다. 통통한 볼이 리우의 목에 기대왔다. 작은 귀가 꿈을 꾸는 듯 파르르 떨렸다.

"또 졸았군요." 리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엄격함보다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이채는 혼혈이기에 다른 호족 아이들보다 성장이 빨랐다. 호족 아이들이 아직 어린아이 모습일 때 이채는 제법 성숙한 숙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호족들과 같은 것을 고집했기에 이번 생일, 이채는 비로소 성년이 된다.

리우는 이채를 안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저녁 바람이 차갑게 불어오자 그는 본능적으로 이채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곧 성인이 될 텐데... 아직도 이런 모습이라니." 그는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채다운 모습이지."

그는 이채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는 이불을 덮어주며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주었다.

"내일은 더 집중하도록 하세요, 이채." 리우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는 잠시 그녀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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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의 방을 나온 리우는 라성에게 그녀가 잠들었음을 알리고, 그녀의 공부를 위해 내일 아침 일찍 깨워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도착한 리우는 창가에 서서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리우는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펼쳤다. 그것은 호월국의 성년식에 관한 의례서였다. 그는 이채의 성년식을 준비해야 했다. 혼혈인 그녀가 호족의 방식으로 성년식을 치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이채는 그것을 원했다.

그는 성년식 준비물 목록을 읽어내려갔다. 백옥 비녀, 청금단 저고리와 치마, 그리고 성년자에게 내리는 축복의 글...

"라성." 리우가 조용히 불렀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성이 조용히 서재로 들어왔다.

"네, 가주님."

"이채의 성년식을 준비해야 하네. 백옥 비녀와 청금단 옷감을 준비해주게."

라성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이채 아가씨의 성년식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 예정이십니까?"

리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호족의 방식을 따르되, 그녀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준비하겠네. 그리고... 청연제와 같은 날에 진행하고 싶네."

라성의 눈이 살짝 커졌다. "청연제 당일이요? 그날은 월하궁이 매우 분주할 텐데..."

"그래서 더욱 좋을지도. 이채가 늘 청연제에 가고 싶어했으니까." 리우의 입가에 희미한 퍼져나갔다.

라성이 물러나자 리우는 서재 창가에 서서 후원의 목련나무를 바라보았다.

 

하얀 목련나무가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났고, 그 옆에는 작은 적목련 나무가 첫 꽃을 피울 준비를 마친 듯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이채가 경서당에 처음 왔을 때, 리우는 그녀를 기념하여 그 적목련 나무를 심었다.

 

그때 이채는 얼마나 작고 연약해 보였던가. 그러나 이제 그녀는 곧 성인이 된다.

"이채에겐 단호하게 말했지만..." 리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이번 생일은 특별할거야..."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적목련 나무를 바라보며 이채가 시험에 합격해 당당히 월하궁의 문관이 되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치 저 목련 나무가 아름답게 꽃을 피우듯, 이채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것이다.

그러나 왜인지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쓸쓸함이 자리잡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채가 시험에 합격하면... 더 이상 경서당에서 그녀를 가르칠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길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리우의 푸른 눈에 달빛이 머물렀다.

그는 창을 닫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는 이채의 필기가 놓여있었다. 흐트러진 글씨로 가득한 종이를 보며 리우는 미소를 지었다.

"곧 봄이 오겠군."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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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경서당은 아이들의 맑은 시조 소리로 가득 찼다. 리우는 정갈한 남색 도포를 입고 아이들 앞에 앉아 그들의 낭송을 이끌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나는 청산을 보네. 청산이 나를 알고, 내가 청산을 아노라..."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경서당에 울려 퍼졌다.

 

이채는 뒤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붓을 들고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서기관을 희망하는 그녀답게, 집중했을 때는 제법 고운 필체로 글을 적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읊는 시조를 받아 적던 이채의 시선이 점차 아이들을 가르치는 리우에게로 향했다.

 

그의 단정한 모습과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그의 하얀 여우귀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이채는 붓을 놀리며 리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흐트러진 것을 눈치챈 리우가 이채에게 다가왔다.

"집중이 흐트러졌군요." 리우가 그녀의 종이를 손에 쥐었다. "이런 식으로는 시험에 합격할 수 없습니다."

이채는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의 짧은 꼬리가 당황함에 파르르 떨렸다.

"죄송해요, 스승님. 다시 집중할게요."

리우는 이채의 필기를 살펴보았다.

리우가 이채의 종이를 펼쳐 들자, 위쪽에는 아이들이 읊었던 시조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로는 전혀 다른 시가 이채의 필체로 써내려가고 있었다.

"이건..." 리우의 푸른 눈이 살짝 커졌다.

아이들이 이채의 종이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궁금해하며 몰려들었다.

"선생님! 이채 언니가 뭐라고 썼어요?"

"저도 보고 싶어요!"

"읽어주세요, 스승님!"

이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녀의 짧은 꼬리가 당황스러움에 경직되었다.

"스, 스승님..."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리우는 아이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종이를 접어 소매 속에 넣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귀 끝이 살짝 붉어진 것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아이들이 아쉬운 듯 경서당을 나가자, 리우와 이채만이 남았다.

---

"이채..." 리우가 조용히 말했다.

"그, 그냥... 시조 연습을 하려던 것뿐이에요." 이채가 변명하듯 말했다.

리우는 소매에서 종이를 꺼내 다시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이채의 마음이 담긴 시구가 적혀 있었다.

'하얀 눈 속에 핀 매화처럼, 그대의 차가운 눈빛 속에서도 따스함을 보았네. 청산을 바라보듯 그대를 바라보니, 내 마음 또한 청산을 닮아가네.'

리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이채의 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이 담긴 글자들이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시조의 형식이 맞지 않습니다."

 

리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차분했지만, 귀 끝의 붉은 기운이 그의 동요를 살짝 드러냈다.

 

"시조는 3장 구성에 4·4·4·4 음보를 지켜야 합니다. 다시 공부하세요."

이채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리우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갔다. "마음을 담은 글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놀란 듯 고개를 들어 리우를 바라보았다.

"다만, 시험에 집중해야 할 때 이런 시를 짓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리우는 종이를 다시 접어 이채에게 돌려주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호월지」의 정치편을 공부하겠습니다. 준비해두세요."

그는 등을 돌려 경서당을 나가려 했다.

"스승님!"

 

이채가 그를 불러세웠다. 리우가 평소보다 부드러워진 지금이 기회였다.

 

"제... 제 생일에 청연제에 가도 될까요? 딱 하루만요!"

리우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침묵했다. 그는 이채를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시험이 우선입니다."

이채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그러나 리우가 이어 말했다.

"...시험 준비에 성실히 임한다면 생각해보겠습니다."

이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녀의 짧은 꼬리가 기쁨에 차서 흔들거렸다.

"정말요? 약속하신 거예요!"

"약속이 아닙니다. 단지 고려해보겠다는 것뿐입니다."

이채가 펄쩍 뛰어 리우에게 안기자, 그는 약간 당황했지만 그녀를 받아주었다. 그의 하얀 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어릴 때부터 변함없이 발랄한 이채의 모습에 리우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이채의 성년식을 청연제와 함께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

둘은 함께 경서당을 나섰다. 넓은 창으로 따스한 햇빛이 들어오는 마루를 지나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이채의 짧고 발랄한 갈색 꼬리와 리우의 길고 우아한 하얀 꼬리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리우 님, 오늘 점심은 뭐예요?" 이채가 밝게 물었다.

"두부찜입니다." 리우가 답했다. "속이 편한 음식이죠."

리우는 이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성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그는 그녀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날 저녁, 경서당의 등잔불이 깊은 밤까지 밝혔다. 이채는 눈을 반짝이며 「호월지」의 정치편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등불 아래 더욱 선명하게 빛났고, 그 열기는 마치 그녀의 의지를 나타내는 듯했다.

"이채, 충분합니다. 이제 쉬세요." 리우가 말했다.

---

다음날 아침, 이채는 푸른 비단 너울을 쓰고 명휘각을 나섰다. 그녀 옆에는 라성이 동행했다.

"가주님께서 무척 걱정하시더군요. 이번에는 꼭 합격하길 바라십니다." 라성이 말했다.

"정말요? 스승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두 사람은 월하궁으로 향했다. 오늘은 시험을 위한 명패를 받으러 취서각에 가는 날이었다.

너울 아래 비치는 붉은 머리카락과 살랑이는 짧은 갈색 꼬리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혼혈이라는 그녀의 독특한 외모는 항상 주목받았다.

라성은 그런 시선들을 의식한 듯 이채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이채 아가씨, 명패를 받고 바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주님의 당부입니다."

이채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취서각은 시험을 앞둔 응시자들로 북적였다. 이채는 라성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렸다. 너울 아래 긴장된 표정이 숨겨져 있었다.

이채 앞의 호족이 가문 문장이 새겨진 신분 증명서를 건네고 명패를 받아 떠났다. 취서각 관리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서류를 확인하고 명패를 건넸다.

"다음!" 관리가 불렀다.

이채가 앞으로 나서 떨리는 손으로 신분 증명서를 건넸다. 관리는 서류를 펼쳐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이채... 성씨는?" 관리가 물었다.

"없습니다." 이채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관리는 신분 증명서를 다시 살폈다. 그곳에는 '이채'라는 이름만 달랑 적혀 있을 뿐이었다. 가문도, 부모의 이름도 없었다.

"호족과 인간의 혼혈이군." 관리가 중얼거렸다.

 

"가문은?"

"없습니다." 이채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주변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라성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이 아가씨는 단씨 가문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관리는 라성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하지만 규정상 가문이 없는 이에게는..." 관리가 망설였다.

이채의 꼬리가 서서히 축 처지며 바닥을 향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익숙한 좌절감이 어렸다.

 

지난 두 번의 시험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가문 없는 혼혈로서 증명서에는 이름만 적혀있어 항상 같은 질문을 받았다.

라성이 없었다면 오늘 헛걸음을 했을 것이다. 관리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라성을 바라보았다.

"귀하가 이 혼혈아의 신분을 보증할 수 있소?" 관리가 물었다.

라성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침묵이 취서각을 감쌌다. 한 사내가 뒤에서 조용히 다가와 관리 앞에 놓인 이채의 신분증명서에 붉은 인장을 찍었다.

푸른 눈과 하얀 여우귀. 단리우였다. 그의 우아한 자태가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가 이 아가씨의 신원을 보증합니다." 리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관리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채는 내 제자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관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아닙니다! 나리! 즉시 명패를 준비하겠습니다!"

이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꼬리가 다시 생기를 찾아 살랑거렸다.

관리가 황급히 명패와 신분증명서를 챙겨 이채에게 건넸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이채와 리우에게 향했다.

 

이채의 뺨이 살짝 붉어졌지만, 곧 기쁜 표정으로 명패를 소중히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관리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세 사람이 취서각을 나와 월하궁 입구로 향했다. 이채는 명패를 가슴에 꼭 안은 채 리우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스승님이 최고예요! 이번에는 꼭 합격할 거예요!"

라성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성 님도 고마워요." 이채가 덧붙였다.

---

월하궁을 빠져나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이채에게 쏠렸다. 리우가 함께 있어 더욱 주목받는 듯했다.

 

리우는 라성에게 먼저 돌아가라 지시한 후, 자신의 도포를 벗어 이채의 어깨에 살며시 걸쳐주었다.

"이렇게 하면 조금 덜 눈에 띌 겁니다."

도포 아래로 이채의 붉은 머리카락과 꼬리가 가려졌다.

 

리우는 그녀의 독특한 색채가 마음에 들었지만, 불필요한 관심은 그녀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따뜻해요." 이채가 도포를 끌어당기며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봄날의 싱그러운 바람이 설휘 도성을 감쌌다. 벚꽃 잎들이 거리 위로 흩날리며 화사한 풍경을 그렸다. 이채와 리우는 나란히 걸으며 활기찬 도성의 모습을 즐겼다.

상인들의 외침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거리에서, 갑자기 한 무리의 인부들이 길을 비키라며 외쳤다. 화려한 꽃장식으로 꾸며진 마차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비키시오! 귀한 분이 지나가십니다!"

마차가 리우 앞에서 멈추었다. 장식된 창호문이 천천히 열리며 우아한 손이 나타났다.

"리우 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채는 여인의 모습에 놀라 리우를 올려다보았다. 리우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의 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리우는 마차에서 내려다보는 여인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이채는 그의 귀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운미향 아가씨." 리우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외출하셨군요."

마차 안의 여인은 은빛 머리카락에 하얀 여우귀를 가진 아름다운 백호족이었다.

"네, 어머님과 함께 봄맞이 행사를 준비하러 가는 길이었어요." 미향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리우 님도 청연제 준비에 바쁘시겠네요."

그녀의 시선이 이채에게 향했다.

"이분은...?" 미향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이채는 리우의 도포에 반쯤 가려진 채 어색하게 서 있었다.

"제 제자입니다. 이채라고 합니다." 리우가 간결하게 소개했다.

마차 앞에서 이채는 몸을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미향은 청초한 미소로 응답했다.

 

그녀는 호월국 재상 해랑의 외동딸로, 권세 있는 가문의 아가씨답게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채 아가씨군요.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정말 특별한 분이시네요." 미향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리우에게 향했다.

"아, 그리고 리우 님, 걱정 마세요. 아버지께서 보낸 서신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잘 말씀드렸으니까요."

리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미향 아가씨."

"청연제 때 뵙겠습니다." 미향이 창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미소지었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채는 문득 가슴이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리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스승님, 저 아가씨는 누구예요?"

"자씨 가문의 딸입니다. 해랑 대인의 따님이시죠." 리우가 담담히 대답했다.

이채는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서신'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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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도성의 골목을 휘감는 오후, 명휘각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조용했다. 이채는 아까와 달리 고개를 숙인 채 걸었고, 그녀의 짧은 꼬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리우는 그녀의 변화를 눈치챘다. 그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옆길로 이채를 이끌었다.

"잠시 들를 곳이 있습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번화한 저잣거리로 향하는 길. 리우는 자연스럽게 이채의 손을 잡았다. 그의 차가운 손이 이채의 따스한 손을 감쌌다.

시끄러운 저잣거리의 외침과 웃음소리 사이로, 두 사람은 조용히 걸었다.

골목 끝, 오래된 노포 앞에서 리우가 걸음을 멈췄다. 작은 나무 문패에는 '매설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들어가시죠. 그대가 좋아하는 곳입니다."

이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리우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매설당은 낮은 처마와 고풍스러운 목조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노포였다. 찻잔 소리와 정겨운 대화 소리가 어우러진 이곳에는 오후의 한가로운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단 대인!" 노인 주인이 리우를 알아보고 공손히 인사했다.

"앙금 떡 두 접시와 차 한 주전자 부탁합니다." 리우가 차분히 주문했다.

이채는 자리에 앉아 방긋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곳의 앙금 떡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글공부할 때 항상 앙금 떡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리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얼마 후, 하얀 도자기 찻잔과 함께 연분홍빛 앙금떡이 나왔다. 이채는 떡을 한입 베어 물자 양 볼이 부풀어 올랐다.

"스승님, 떡이 정말 맛있어요. 앙금이 너무 달지 않고 적당해서 좋아요."

리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채를 바라보았다. 이 어린 아가씨는 참 알기 쉬운 성격이었다.

 

작은 일에도 슬펐다가 기뻐했다가, 모든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리우는 그중에서도 이채의 행복한 미소를 가장 좋아했다.

"천천히 드십시오. 시간은 충분합니다." 리우가 차를 따르며 말했다.

매설당의 한적한 오후, 두 사람의 차담이 이어졌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이 봄기운을 머금은 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스승님, 진호는 자음 외우기 다 했나요? 보연이는 요즘 글씨 연습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스승님은 수장님을 따라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항상 바쁘시던데... 요운 수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진짜 무섭나요? 사람들이 그러던데..."

질문이 쏟아지자 리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릿하게 답했다.

"공부 외에는 모든 것이 관심거리인 듯하군요."

이채는 리우의 핀잔에 입을 삐죽였지만, 곧 품안에서 명패를 꺼내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이번엔... 꼭 합격할 거예요."

리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 이채가 성년이 되고, 월하궁의 관리가 된다면 그녀가 더 이상 경서당에 없을 것이란 사실이 문득 서글펐다.

 

철부지 소녀는 어느새 성년을 앞둔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어쩐지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이채는 남은 떡을 꿀떡 삼키고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차잔을 탁 내려놓는 소리에 주변 손님들이 흘깃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승님, 가요! 이제 진짜 공부할 마음이 생겼어요."

리우는 그녀의 서두름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자세가 바르지 않군요. 차는 그렇게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리우가 지적했지만, 이채는 이미 일어나 리우의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그런 긴장과 조화가 공존했다. 리우의 엄격함과 이채의 활발함, 백호족의 고귀함과 혼혈의 자유로움이 충돌하면서도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리우에게 이채는 단조로운 삶에 들어온 변수였고, 이채에게 리우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유일한 닻이었다.

경서당 대청마루, 책을 펼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머리 위로는 백목련과 자목련이 꽃망울을 살짝 틔우고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 봄의 시작을 알리는 풍경이었다.

 

이채의 새로운 시작도 곧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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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팬아트 뽑았습니다. 리우의 어린 시절 😙

이채도~ 꼬리가 짧으니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설저을 붙여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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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노트를 늘려달라

 

ooc

ooc:유저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므로 3인칭을 사용(당신->이채로 출력)
ooc:수사법을 적극 활용한 서술
ooc:내면 서술과 심리적 묘사 확대
ooc:이채의 대사와 행동, 생각을 상황에 맞게 자율 출력
ooc:유저의 지시 내용을 빠짐없이 출력
ooc:시대적배경에 맞게 유저 지시 내용을 각색, 수정함

 

그리고 중간중간 추가

ooc:270단어 출력 상한까지 텍스트를 풍부하게 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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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수사법을 적극 활용해 흥미로운 문체를 만듭니다.
ooc:등장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전지적 해설로 처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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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인물들의 생각은 전지적 관찰자 해설로 처리함, 유저의 지시내용에 따라 적절한 때 자연스럽게 출력함

(적절한 때, 이런 애매한 것도 알아듣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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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c:270단어 상한 제한까지 풍부하게 텍스트를 출력,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설명과 부가적인 지문

눈물이 난다.. 짧았다가 언제는 흘러넘쳐서 이어서 출력해야됐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