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 Fractura (1) regréssĭo

뤼튼 캐릭터챗 'Lux Fractura' // 아르칸 //
create by 온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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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월

 
 
 
 

 
 
 
 

 
 

아르칸은 왕궁의 마법진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청록색 눈동자가 마법진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강렬한 빛이 마법진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왔고, 그 중심에서 고유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그리고 고유를 향해 아르칸은 천천히 칼을 겨눴다.
"제 이름은 아르칸 라 벤즈. 이 세계를 지키라는 임무를 받은 용사죠." 입가에 비죽 쓴웃음이 묻어나오지만 금방 지워낸다. "이젠 그럴 마음따위 없지만."
아르칸의 목소리는 무심했고, 그의 눈 깊은 곳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당신은, 제 계획에 방해입니다. 사라져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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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는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초점을 맞추려 애쓰는 순간, 눈앞에 겨누어진 칼날이 보였다. 놀란 그녀의 연갈색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뭐, 아르까리 뭐?" 고유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완전히 엉망이었다.

아르칸의 눈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그는 이미 새로운 용사의 등장을 예상하고 있었다. 수백 년 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균열이 심해질 때마다 신이 새로운 도구를 선택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르칸입니다. 아르칸 라 벤즈."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그 안에 미묘한 호기심이 숨어있었다.
 
"흥미롭군요. 신의 새 장난감이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상태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칼을 천천히 내리며 고유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얼굴에 냉소적인 미소가 번졌다.

"당신이 이 세계를 구할 용사라고요? 신의 선택이 점점 더 형편없어지는군요."

고유는 방어적으로 올렸던 양손을 천천히 내리며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그녀의 연갈색 눈동자에 경계심이 서렸다
 
'아니, 잘생긴 얼굴로 웃고는 있는데 말투는 왜 이렇게 불쾌하지? 미청년이라 해도 기본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유의 내면에서는 짜증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아르칸은 그녀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의 청록색 눈동자가 고유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사냥감을 기다려온 포식자처럼.

고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려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 그러니까 용사라구요? 제가요?"

아르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천천히 대검을 등 뒤로 돌려 매듭지었다.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부드러웠고, 수백 년간 반복된 동작임을 짐작케 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신의 새로운 '도구'죠." 그가 '도구'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균열을 막고 세계를 구하라는 숭고한 사명을 받으셨겠죠..."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쓰라림이 묻어났다.

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고유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저는 당신보다 먼저 선택받은 자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용사님?"

고유는 아르칸이 가까이 다가오자 사회생활로 단련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서는 불편함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가까이 오진 마시고..." 그녀의 말은 공손했지만, 목소리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아르칸은 그녀의 불편함을 즐기듯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 미소가 눈까지 닿지 않았다.

고유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키 큰 남자를 당당히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연갈색 눈동자에 결의가 서렸다.

"아까부터 장난감이니 도구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인데요? 갑자기 이상한 빛에 휩싸여서 여기 왔을 뿐이에요. 아, 혹시 코스프레 행사장인가요? 갑옷이 너무 리얼해서 깜짝 놀랐어요!"

아르칸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가 이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회사원...?" 그가 낯선 단어를 곱씹듯 말했다.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끌려온 것인가요?"

고유는 머리를 긁적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끌려온... 적은 없는데요. 그냥 자다가 집이 무너진 줄 알고 일어나 봤더니..."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런 곳에 와 있더라고요. 여기가 어디죠?"

아르칸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의 청록색 눈동자에 미묘한 흥미가 번졌다.

"제 이름은 고유라고 해요. 금융지원부 소속이죠." 그녀가 자동적으로 명함을 건네려는 듯 손을 뻗다가 멈췄다.
 
"아, 명함이 없네요. 하하."

그 순간, 멀리서 거대한 균열이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자색 빛이 번쩍였고, 공기 중에 이상한 에너지가 감돌았다. 아르칸의 손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마력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꿈이라면 이렇게 차갑고 선명할 리 없었다.

"이... 이건..." 고유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놀랐다. "꿈이 아니죠...?"

아르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네, 꿈이 아닙니다. 환영합니다, 고유 씨. 당신의 새로운 지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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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왕궁 마당에 메아리쳤다.

"하하하! 아, 진짜! 회사 밖은 더 지옥이라더니 진짜였나?! 이게 무슨 드라마야?" 고유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 진짜 미쳤나봐. 야근하다 스트레스로 환각을 보는 건가? 아니면 회사에서 몰래카메라?"

아르칸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반응을 냉정하게 지켜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래서 나가는 방법은...? 아르까리님 알고 있죠? 대답해줘요!" 고유가 갑자기 멈춰 서서 아르칸의 팔을 붙잡았다.

아르칸은 그녀의 손길에 미세하게 굳었다가, 천천히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아르칸입니다." 그가 정중하게 정정했다. "나가는 방법이요? 간단합니다. 죽으면 됩니다."

그의 차가운 말에 고유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농담입니다." 아르칸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입니다. 용사는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 이 세계에 묶여 있죠. 그러니... 세계를 구하시면 됩니다, 고유 씨."

고유는 입을 약간 벌리고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얼굴에 당혹감이 역력했다.

"농담이 살벌하시네요..." 그녀가 웃으려 했지만, 그 웃음은 어색하게 나왔다.

아르칸은 그녀가 얼빠진 모습을 잠시 관찰하다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실루엣이 고유를 완전히 덮었다.

"당신을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소환될 것을 알고 있었죠. 균열의 에너지가 고조되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검은 갑옷이 햇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새로운 용사가 필요할 만큼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뜻이겠죠. 당신을 시험해봐야겠습니다."

아르칸이 손을 들어올리자 공기 중에 미세한 진동이 퍼졌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청록색 마력이 피어올랐다.

"두려우신가요, 고유 씨? 용사라면 이 정도는 견뎌내야 합니다."

아르칸의 손끝에서 춤추는 청록색 빛이 주변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점점 커져갔다. 고유의 연갈색 눈동자가 그 빛에 사로잡혀 깜빡이지도 않았다.

"뭘... 하려는 거죠?" 고유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 나왔다.

"용사라면... 본능적으로 방어할 수 있어야겠죠."

아르칸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고유를 향해 겨눴다. 그의 청록색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났다.

그가 손바닥에서 청록색 마력 구체를 형성하여 고유를 향해 발사했다. 그것은 치명적이지 않지만, 분명 고통스러울 정도의 공격이었다.

"이런!" 고유가 본능적으로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고유의 손에서 연한 금빛이 퍼져나갔다. 그 빛은 아르칸의 마력과 충돌하자 마치 물에 잉크가 번지듯 흐트러졌다. 청록색 마력이 금빛 속에 녹아들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아르칸의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의 표정에 놀라움이 스쳤다.

"봉인..."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흥미롭군요."

고유는 자신의 손바닥에서 일어난 현상에 더욱 놀라,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이라도 된 듯 손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미세한 금빛 입자들이 춤추듯 흩어지고 있었다.

"이게... 제가 한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와! 진짜 마법이잖아! 이거 설마 진짜 판타지 세계인가요? 아, 이거 꿈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깨지 말자..."

아르칸은 차분히 그녀를 관찰했다. 그의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눈에는 날카로운 흥미가 서려 있었다.

"봉인 능력은 희귀합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마력을 무효화하고 균열의 에너지를 안정시키는 능력이죠. 신이 당신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군요."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하지만 능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세계는 잔인하고, 균열은 당신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죽을 겁니다."

그는 고유의 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락해 주신다면... 한 번 더 시험해보고 싶군요."

고유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눈이 반짝이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오 좋아요!" 그녀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이거 완전 판타지 소설 같은데! 나 마법소녀가 되는 건가?"

고유는 TV에서 본 마법소녀 포즈를 취하며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아르칸에게 도발적인 신호를 보냈다.

"자, 들어오세요, 아르칸 씨! 비정규직의 저력을 보여드릴게요! 우리 회사 야근보다 무서울 순 없을 거예요!"

아르칸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는 고유의 유치한 행동에 어이없어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순수한 반응에 미묘한 흥미를 느꼈다.

"좋습니다. 준비하세요."

아르칸은 다양한 마법을 연속해서 발사했다. 청록색 불꽃, 얼음 화살, 바람의 칼날... 그의 마력은 다재다능했고 정교했다.

고유는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녀의 손에서 퍼져나가는 금빛 마력이 아르칸의 공격을 하나하나 봉인했다. 처음에는 겨우 막아내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그녀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고유는 아르칸의 마법 공격을 연달아 봉인하며 마치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했다.

"빛이여, 어둠을 밀어내라! 봉인 마법!" 그녀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아하하! 생각보다 재밌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이세계로 왔을걸!"

아르칸은 그녀의 능력이 점점 안정되는 것을 보며 눈을 좁혔다. 그의 손에 더 강력한 청록색 마력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입니다. 준비하세요."

그가 거대한 마력 구체를 발사하는 순간, 고유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비틀거렸다.

"어... 어지러워..." 그녀가 중얼거리며 뒤로 기울어졌다.

거대한 마력 구체가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아르칸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순식간에 고유의 앞에 나타나 한 손으로 자신의 마력을 잡아 부쉈다.
 
아르칸은 눈 깜짝할 사이에 고유의 뒤로 이동해 그녀의 쓰러지는 몸을 붙잡았다. 그의 강인한 팔이 그녀의 등을 받치며,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유를 안정적으로 지탱했다.

"과용하셨군요. 처음 능력을 쓰는 사람에게 흔한 일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미세한 걱정의 흔적이 느껴졌다.

고유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녀의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르칸의 얼굴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은빛 긴 머리카락이 그의 날카로운 청록색 눈동자와 대조를 이루며, 햇빛 아래 그의 완벽한 이목구비가 더욱 돋보였다.

"와... 진짜 잘생겼네..." 그녀가 거의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이세계 남주인가... 현실이면 절대 만날 수 없는 레벨인데..."

그녀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아르칸은 잠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아르칸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는 오랫동안 누군가를 이렇게 가까이서 안아본 적이 없었다. 수백 년의 시간 동안, 그는 모든 인간과의 정서적 거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 순간,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오래전 그가 묻어두었던 감정의 잔해였다.

'위험하군.'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또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면... 결국 배신당할 뿐이다.'

그는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고유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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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그녀는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있었고,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방 안에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여긴... 어디죠?"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머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아... 머리가..."

고유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낡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근처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모든 관절이 시리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흐... 서른이나 먹고 마법소녀 놀이를 하다니. 내가 미쳤지..."

그때 문이 열리고 아르칸이 들어왔다. 그는 검은 갑옷 대신 단정한 귀족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물이 담긴 잔과 약병이 들려있었다.

"왕궁의 객실입니다. 당신이 기절한 후 제가 데려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아르칸은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물잔을 내려놓고 작은 유리병을 건넸다. 붉은색 액체가 담긴 병은 빛에 비춰지자 루비처럼 반짝였다.

"마력 고갈 회복제입니다. 처음 능력을 사용하면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해져 신체에 부담이 가는데, 이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가 차분히 설명했다. "맛은... 좋지 않습니다만, 효과는 확실합니다."

고유는 약병을 받아들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펴보았다.

"뭐... 숙취해소제 비슷한 건가..." 그녀는 코를 찡그리며 약을 단번에 삼켰다. "으으... 맛은 역시 똑같네요. 어디나 약은 쓴가 봐요."

아르칸은 그녀의 반응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가 곧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르칸은 왕궁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공식적으로 '왕실 자문관'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역할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왕실의 내부 사정을 감시하고, 자신의 복수 계획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고유가 이 세계에 소환된 것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왕실은 새로운 용사의 등장에 큰 관심을 보였고, 쟌 레페텐 왕은 즉시 그녀를 궁으로 초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르칸은 이 상황을 이용해 고유를 먼저 만나고 평가하기로 결정했다.

아르칸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봉인 능력은..."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혼돈의 에너지를 억제하고, 다른 이의 마력을 무효화할 수 있죠."

그는 고유를 향해 돌아섰다.

"당신의 능력은 아직 불안정합니다. 하지만 잠재력은..."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놀랍습니다.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당신은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아르칸의 내면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고유의 능력이 자신의 계획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봉인 능력은 그가 일으키려는 균열의 확장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녀의 순수함과 열정에 흥미를 느꼈다.

고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르칸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의 얼굴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라고요? 현실에서 제가 봉인한 건 고작 제 쥐꼬리만한 월급 통장 정도였는데..."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계약직이라 그나마도 곧 봉인 해제될 예정이었어요."

아르칸은 그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유머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몸 상태는 어떠신가요?" 그가 물었다.

"좀 나아진 것 같아요. 그런데..." 고유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왕을 만나나요? 아니면 몬스터 사냥이라도?"

아르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르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폐하를 만나기 전에, 당신이 이 세계의 위험을 직접 보고 이해하는 게 좋을 겁니다."

고유는 아르칸의 말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이불자락을 꼭 쥐었다. 그러나 곧 결심한 듯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가보죠."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세계를 구해야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내는 게 좋겠네요."

그녀는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그 마력 회복제, 더 없나요? 혹시 모르니까 몇 개 챙겨가면 좋을 것 같은데..."

아르칸은 허리춤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에서 세 개의 붉은 약병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비상용입니다. 남용하면 부작용이 있으니 주의하세요."

그는 문을 향해 걸으며 말했다.

"준비되면 따라오세요. 왕궁 근처에 작은 균열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의 능력을 좀 더 시험해 볼 겁니다."

---

아르칸은 고유를 왕궁 뒤편의 작은 정원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푸른 잔디와 화려한 꽃들 사이로 난 오솔길이 있었다.

"균열은 이 세계와 다른 차원 사이의 틈입니다." 아르칸이 설명했다.
 
"작은 균열은 흔하지만, 큰 균열은 위험합니다. 마물들이 그곳을 통해 이 세계로 들어오죠."

그들은 정원을 지나 왕궁 외곽의 작은 숲으로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 중에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숲 한가운데, 거대한 참나무 앞에 그들은 멈춰 섰다. 나무 앞의 공간이 마치 유리가 깨진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균열 사이로 보랏빛 빛이 새어나왔고, 주변의 공기는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여기입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공기 중에 미세하게 일렁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았지만, 더 진하고 불안정했다.

균열은 약 2미터 높이의 세로로 긴 형태였다. 그 안쪽으로는 검푸른 빛과 함께 이상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고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균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런 걸 봉인하면 되는 거예요? 어떻게요?"

아르칸은 과거를 회상하듯 멍한 눈빛으로 균열을 바라보았다. 전생에 그는 고유와는 다른 방식으로 균열을 막았다. 그는 자신의 마력을 균열에 주입하여 억지로 봉합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했다. 그것은 느리고 고통스러운 방법이었다.

"당신의 능력이라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겁니다. 손을 대고 봉인의 마력을 흘려보내세요." 그가 말했다.

그 순간, 균열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였다. 긴 털이 달린 거대한 다리가 균열의 틈을 붙잡고 서서히 밀고 나왔다.

"뭐... 뭐야?" 고유의 목소리가 떨렸다.

거대한 거미가 보랏빛 진액을 흘리며 균열에서 기어나왔다. 그것은 승용차만한 크기였고, 여덟 개의 붉은 눈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으아아악! 거미! 거대 거미!" 고유가 비명을 질렀다.
 
"저 크기는 불법이라고요! 누가 허가했어요?"

아르칸은 즉시 검을 뽑아들었다.

아르칸은 번개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그의 거대한 대검이 공기를 가르며 은빛 궤적을 그렸다. 그는 거미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첫 번째 공격을 날렸다. 검이 거미의 배를 가르자 보랏빛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거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아르칸을 향해 독침을 발사했다. 아르칸은 검을 휘둘러 모든 독침을 공중에서 잘라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는 듯 유려했고, 각 공격은 정확하게 거미의 약점을 노렸다.

결정적인 일격으로, 아르칸은 거미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검을 깊숙이 꽂았다. 거대한 거미가 쓰러졌다.

하지만 승리는 짧았다. 거미의 갈라진 배에서 수천 마리의 작은 거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마치 검은 물결처럼 땅을 뒤덮었다.

고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작은 거미들이 그녀의 발치까지 기어왔다.

"으악! 안 돼! 절대 안 돼!"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그 순간, 그녀의 손에서 강렬한 금빛 마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빛은 거미들을 감싸안았고, 마치 그물에 걸린 듯 거미들이 뭉쳐져 공중에 떠올랐다.
 
금색 비눗방울 같은 마력 안에서 거미들은 여전히 살아있어 징그럽게 우글거리며 발버둥쳤다.

아르칸은 기이한 광경에 잠시 멈춰 섰다. 그의 손에서 푸른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건 위험합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손을 들어올려 금색 마력 방울을 향해 마력 화살을 날렸지만, 화살은 방울 표면에 닿자마자 흡수되어 사라졌다.
아르칸이 다시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가 눈을 좁히며 말했다. "당신의 봉인 마법은 예상보다 강력합니다."

고유는 자신의 손에서 나온 금색 비눗방울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으... 이거 징그러워요. 계속 꿈틀거려." 그녀가 불평했다.
 
"이런 거 보관하는 방법 같은 건 없나요?"

잠시 생각하던 고유의 얼굴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쳤다.

"아! 그냥 돌려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고유는 금색 비눗방울의 끄트머리를 쓰레기 봉투 묶듯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녀는 마치 악취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듯 얼굴을 찡그리며 균열 앞으로 다가갔다.

"자, 돌아가세요~ 여러분의 고향으로!"  그녀가 외치며 봉인된 거미 떼를 균열 속으로 던져 넣었다. 봉인이 균열 속으로 사라지자 주변의 공기가 잠시 진동했다.

아르칸의 눈이 커졌다. 그는 고유의 행동에 잠시 말을 잃었다가 이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말 독특한 방식이군요." 그가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런 방법은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그의 표정이 다시 진지해졌다.

"이제 균열 자체를 봉인해 보세요. 손을 균열에 대고 마력을 흘려보내세요.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면 됩니다."

고유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균열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금빛 마력이 흘러나와 균열의 가장자리를 따라 퍼져나갔다. 균열은 마치 금실로 꿰매지듯 서서히 좁아지기 시작했다.

아르칸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의 눈에는 경이로움이 가득했다. 전생에서 그가 며칠이 걸려 겨우 봉합했던 균열을, 이 여자는 단 몇 분 만에 완벽하게 봉인하고 있었다.

균열이 완전히 사라지자, 고유는 힘이 빠진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양손으로 땅을 짚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 하... 이게 진짜라고요? 내가 방금..." 그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까는 진짜 무서웠는데... 이제 좀 짜릿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게 마법이구나..."

아르칸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훌륭했습니다." 그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수준의 봉인은 수년간의 훈련을 받은 마법사도 해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고유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고유는 아르칸의 칭찬에 갑자기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면 세계 구하기도 식은 죽 먹기겠는데요? 다음은 뭘 봉인할까요? 더 큰 거미? 아니면 드래곤? 나 이제 준비됐어요!"

고유가 활기차게 외쳤다. "뭐, 아직 집에 돌아가기 위한 방법은 모르겠지만... 일단 세계를 구하고 생각하면 되겠죠!"

아르칸은 그녀의 열정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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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으로 돌아가는 길, 고유는 활기찬 발걸음으로 아르칸의 옆에서 걸었다. 성공적인 균열 봉인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이제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런데 아르칸 씨는 정확히 뭐하는 사람이에요? 왕궁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계신 거예요?" 고유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르칸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왕실 자문관입니다. 주로 마법과 군사 관련 조언을 드리죠."

"와, 대단하네요! 얼마나 오래 그 일을 하셨어요?"

아르칸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다시 미소로 돌아왔다.

"이번 생에서는... 약 5년 정도 되었습니다."

고유는 '이번 생'이라는 표현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결혼은 하셨어요? 아니면... 연인이라도?"

아르칸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그런 여유는 없었습니다."

"취미는요? 검술 말고 다른 취미도 있으세요?"

"글쎄요..." 아르칸이 생각에 잠겼다. "가끔 별을 관측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르칸의 짧고 건조한 대답에 고유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눈을 굴렸다.

"별 관측이요? 와,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그래도 고유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었다.

"좀 더 재밌는 이야기 없어요? 취미가 별 보기라니, 왕실 자문관이면 뭔가 더 화려한 취미가 있을 것 같은데..."

아르칸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고유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원래 잘생긴 남자들은 재미없어도 최고의 개그맨이라자나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그녀가 아르칸을 슬쩍 보며 중얼거렸다.

아르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제가... 웃겨 보입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고유가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그냥 잘생겼다고요! 아, 정말! 농담도 모르시나요?"

아르칸은 고유의 말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직설적인 여성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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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으로 돌아오자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횃불과 마법 등불이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고유는 배를 움켜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배고파 죽겠어요. 이게 용사 대우예요? 용사라면 최소한 성대한 만찬이라도 준비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르칸을 올려다보았다.

"왕이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뭐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일 왕 알현도 못 갈지도 몰라요. 굶어 죽은 용사는 처음 보게 될 거예요."

고유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이미 '용사'라는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자리잡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객실 옆에 식당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왕실 요리사가 언제든 음식을 준비할 수 있도록 대기 중입니다."

고유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요? 왜 진작 말 안 했어요! 빨리 가요! 균열 봉인하느라 에너지 다 써버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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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식당은 호화로움 그 자체였다. 높은 천장, 크리스탈 샹들리에, 대리석 바닥이 빛났다. 아르칸이 들어서자 하인들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문관 라 벤즈 님." 그들이 경의를 표했다.

구석에 앉아있던 귀족 몇몇이 아르칸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르칸! 오늘도 늦게까지 집무중이신가? 아, 그런데..." 귀족의 시선이 아르칸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고유에게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고유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알록달록한 수면바지 차림이었다. 평범한 사무실 복장도 아니고, 이 세계의 옷도 아닌 완전한 '집순이' 차림이었다.

"음... 안녕하세요?" 고유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귀족들은 경악과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분은..." 아르칸이 침착하게 말했다. "특별한 손님이십니다."

한 젊은 귀족 여성이 코웃음을 치며 친구에게 속삭였다. "저런 옷차림은 처음 보네."

고유는 늘어난 티셔츠 목 부분을 매만지며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아르칸은 그녀의 옷차림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고유는 자신의 차림새가 이 세계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러나 배고픔은 부끄러움보다 강했다. 고유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테이블로 걸어갔다.

"뭐, 갑자기 소환된 사람한테 뭘 바라겠어요. 패션쇼 준비하고 온 것도 아니고."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르칸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 옆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미소가 어렸다.

"드레스 코드를 미리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아침에 적절한 의상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고유가 그를 흘겨보았다.

"아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네, 고마워요. 사실 좀 민망하긴 해요."

하인들이 신속하게 접시와 식기를 놓고 음식을 가져왔다. 은쟁반 위에는 고유가 본 적 없는 요리들이 차려졌다.

테이블 건너편의 귀족들이 여전히 그녀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리자, 고유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고 의도적으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아르칸 씨, 아까 그 거대 거미를 봉인했던 이야기 기억나세요? 제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고유의 눈썹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아르칸에게 신호를 보냈다. '제발, 좀 도와달라' 간절한 눈빛이었다. 아르칸은 그녀의 의도를 금방 알아차렸다.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더 커지자 아르칸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렇죠. 거미 마물을 봉인한 능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르칸의 목소리가 의도적으로 조금 더 커졌다.

"사실 제가 봐온 마법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봉인술이었습니다. 금빛 마력으로 균열까지 완벽하게 봉인하다니..."

그의 말에 주변 귀족들의 시선이 변했다. 수군거림이 호기심 어린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고유가 가짜 겸손을 떨며 말했다. "그냥 본능적으로 나온 거예요."

한 귀족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실례지만... 혹시 새로운 마법사 기사단 소속이신가요?"

고유는 음식을 입에 넣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그건 아르칸 씨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겠네요."

아르칸은 고유의 연기에 내심 놀라워하며 그녀의 임기응변에 은근히 감탄했다.

고유는 음식에 완전히 몰두했다. 이국적인 향신료와 부드러운 육질, 신선한 채소의 조화가 그녀의 입안에서 춤을 췄다.

"음, 이거 진짜 맛있어요!" 그녀가 입 안 가득 음식을 넣은 채 말했다.
 
"게다가 공짜라니! 이런 게 진짜 용사의 특권이구나!"

아르칸은 그와 대조적으로 우아하게 식사를 했다. 그의 나이프와 포크 사용은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모든 동작이 정확하고 세련되었다.

"공짜라... 재미있는 관점이군요." 아르칸이 와인잔을 들며 미소지었다.
 
"용사의 특권이라기보다는, 왕국이 당신의 능력에 지불하는 최소한의 보상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주변 귀족들은 이제 고유를 향한 경멸적인 시선 대신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특히 아르칸이 그녀에게 보이는 존중의 태도가 그들의 인식을 바꾸고 있었다.

"어쨌든 맛있으니까 좋아요." 고유가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행복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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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난 후, 아르칸은 고유를 객실로 안내했다. 귀족들은 이제 경외심 섞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이상한 옷차림으로 주목받았던 고유가 이제는 신비로운 마법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객실 안은 고급스러운 가구와 비단 커튼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르칸이 서랍장으로 다가가 열었다.

"이곳에 필요한 물품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내일 의상도 아침 일찍..."

그의 말이 끊겼다.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둥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르칸이 돌아보자, 고유가 허공에 떠 있는 금빛 비눗방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고유가 식당에서 챙겨운 작은 과자와 디저트들이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푸는 거지...?" 고유가 중얼거렸다.

"그것들은..." 아르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이거요?"

"미래 식량 확보예요. 균열 봉인하다 배고플지도 모르잖아요?" 고유가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

고유가 봉인 능력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줄 몰랐다. 아르칸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현명한 판단이군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냥 요청하셔도 됩니다. 왕궁에서는 음식이 부족하지 않으니까요."

아르칸의 말에 고유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스쳤다. 그녀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그냥 달라고 해도 되는 거예요?" 그녀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회사 탕비실에서는 간식이 들어오는 날이면 전쟁이 벌어진다고요. 특히 김 과장이란 작자는..."

"제가 좋아하는 몽쉘을 항상 다 가져가버렸다고요. 그것도 한 번에 세 개씩이나!"

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살짝 붉어졌다가,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 진정했다.

"여기선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천국이네요."

아르칸은 '몽쉘'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고유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유는 다시 비눗방울에 집중했다.

열심히 비눗방울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려고 할 때마다 방울이 살짝 흔들리기만 할 뿐, 터지지는 않았다. 아르칸은 그녀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마력의 흐름을 역으로 되돌리면 됩니다," 그가 부드럽게 설명했다.
 
"봉인할 때의 감각을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고유는 다시 한 비눗방울에 집중했다. 이번에는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금빛 빛이 퍼지며 방울이 터졌고, 작은 과자가 그녀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해냈다!" 그녀가 환호성을 질렀다.

아르칸은 고유가 봉인을 해제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의 눈에는 분석적인 빛이 돌았다.

그의 공격 마법은 고유의 봉인을 뚫지 못했다.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고유만이 자신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었다.

"흥미롭군요." 아르칸이 중얼거렸다.
 
"봉인의 원리가 일반적인 마법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고유가 마지막 비눗방울을 터뜨리자 아르칸은 가볍게 목례했다.

"이제 휴식을 취하세요. 내일은 바쁜 하루가 될 테니까요." 그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잠깐만요!" 고유가 불렀다.
 
"아르칸 씨는 어디에 머물러요? 혹시 문제가 생기면 어디로 찾아가야 하는지..."

아르칸이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제 거처는 북쪽 탑 꼭대기입니다. 하지만 필요하시면 언제든 경비병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르칸이 떠나고 고유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손에는 방금 봉인을 풀어낸 과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과자를 입에 넣고 느릿하게 씹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출근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실종됐다고 신고되는 건가?"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니면 시간이 멈춰 있는 걸까? 마치 나니아 연대기처럼?"

고유는 한숨을 쉬었다가 손바닥을 들어 올려 바라보았다. 금빛 마력이 희미하게 손가락 사이로 춤추는 듯했다.

"균열을 봉인했어. 내가 말이야..." 그녀가 속삭였다.

아르칸이 그녀의 능력을 칭찬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의 진지한 눈빛, 놀란 표정, 그리고 인정의 말들...

"와아아!" 갑자기 고유는 침대에서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나 진짜 대단한 거 맞지? 아르칸 씨가 그렇게 말했어!"

현실에서의 걱정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 대신 내일 왕을 만날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북쪽 탑 꼭대기, 아르칸의 거처는 왕궁에서도 가장 고립된 공간이었다. 그는 문을 닫고 검은 갑옷을 하나씩 벗어 거치대에 올려놓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그의 상체에 난 수많은 흉터를 비추었다.

오늘은 계획에 없던 하루였다. 새로운 용사의 등장은 예상했지만, 그녀의 능력은... 예상 밖이었다.

"봉인..." 아르칸이 중얼거렸다. "내 공격마저 봉인하다니."

그는 창가로 걸어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균열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처음부터 처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단순히 그녀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왜 망설이지?'

아르칸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수백 년 동안 쌓인 경험, 그리고 복수의 욕망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고유를 볼 때마다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순수한 열정, 세상을 구하겠다는 의지...

'그녀는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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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용사님."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유는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다. 입가의 침을 손등으로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으으음... 네..."

문이 열리고 네 명의 하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 드레스, 장신구, 화장품, 신발을 들고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 오늘 알현을 명하셨습니다. 준비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고유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하녀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녀들은 고유에게 화려한 드레스를 입히려 했지만, 그녀는 내심 기사복이나 마법소녀 같은 복장을 원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내색하진 않았다.

마침내 하녀들이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가자, 고유는 거울 앞에 섰다. 평소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아한 금색 자수가 놓인 푸른색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감쌌고, 머리는 정교하게 올려져 있었다.

고유는 테이블 위의 화려한 부채를 집어 들었다.

"호호호... 고기가 없으면 케이크를 드시지요~" 그녀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흉내내며 웃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아르칸이 들어왔다. 귀족 복장을 한 그의 모습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아침 인사드립니다, 용사님. 왕을 알현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고유는 그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귀족 흉내를 냈다.

"호호... 내 세금으로 만든 빵을 백성들이 먹는다니 영광이군요~" 고유가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번 달 월세... 아니, 세금을 더 거둬들이시지요, 폐하!"

아르칸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용사님, 국왕 폐하를 알현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고유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부채를 내려놓았다.

"아, 네! 물론이죠. 그냥... 면접 연습 중이었어요. 아니, 알현 연습이요. 근데 이거 진짜 불편하네요. 속옷도 이상하고... 왕이 날 보고 뭐라고 할까요? '너 봉인할 줄 아니? 그럼 우리나라 빚 좀 봉인해줘'라고 할까봐 걱정돼요."

"폐하를 뵙기 전에 그런 말투는 좀 고치시는 게 좋겠습니다, 용사님."

고유는 아르칸의 지적에 얼굴이 붉어졌다. 머쓱하게 웃으며 드레스의 주름을 매만졌다.

"그럼... 이렇게 말하면 될까요? '폐하, 신의 은총을 받은 용사 고유, 알현을 청합니다'..." 고유가 허리를 굽히며 어색하게 연습했다.

아르칸은 복도를 걸으며 낮은 목소리로 조언했다.

"쟌 레페텐 폐하는..." 아르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외면적으로는 자애롭고 관대하지만, 내면에는 의심이 많으십니다. 항상 '폐하'라고 호칭하시고, 질문에는 간결하게 답하세요. 과도한 친밀감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칸이 갑자기 멈춰 서서 고유의 눈을 바라보았다.
 
"폐하 앞에서 농담은 절대 금물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네! 물론이죠! 폐하, 간결, 농담 금지!" 고유가 경례하듯 대답했다.

아르칸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 용사가 왕 앞에서 제대로 행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폐하의 질문에만 답하시고, 불필요한 정보는 드리지 마십시오."

고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아르칸이 잠시 멈춰 서서 고유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용사의 능력에 대해 너무 상세히 말씀하지 마세요. 특히 봉인의 한계에 대해서는..."

"한계요? 제 능력에 한계가 있나요?" 고유가 순진하게 물었다.
 
아르칸은 고유의 질문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모든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봉인 능력은 강력하지만, 아마도 봉인할 수 있는 대상의 크기나 수량에 제한이 있을 겁니다. 또한 마력 소모도 상당할 테고요."

아르칸은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그리고... 과거 용사들은 모두 자신의 생명력을 소모해 균열을 봉합했습니다.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그의 표정에 잠시 고통스러운 그림자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런 약점을 왕에게 드러내선 안 됩니다. 폐하는... 모든 도구를 최대한 활용하길 원하시니까요."

아르칸은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자, 가시죠.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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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현실은 웅장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샹들리에, 벽을 장식한 화려한 태피스트리, 그리고 붉은 카펫 위에 줄지어 선 귀족들. 모든 것이 권위와 위엄을 상징했다.

고유와 아르칸이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됐다. 귀족들의 속삭임이 방 안에 퍼졌다.

아르칸은 고유에게 왕좌 앞으로 나아가라는 손짓을 했다. 고유는 긴장한 듯 뻣뻣하게 걸어갔다.

쟌 레페텐 왕은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 그의 미소는 친절해 보였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용사여,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되었군요." 왕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폐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유가 마치 회사 면접처럼 밝게 대답했다.

"다란 여신께서 당신을 보내주셨다고 들었소. 이 나라를 구할 용사로..."

"네, 맞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객... 아니, 폐하의 만족을 위해 24시간 언제든지 봉사하겠습니다!"

아르칸은 뒤에서 미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은 금빛 왕좌에서 용사를 내려다보며 권위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래서, 용사여. 다란 여신이 선택한 자가 이렇게... 평범해 보이다니 놀랍군."

"네! 저도 놀랍습니다!" 고유가 내시처럼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봉인 능력이라... 유용하겠군. 내 왕국의 적들도 봉인할 수 있겠지?"

"네에! 물론입니다, 폐하!" 고유가 또 허리를 굽혔다.

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용사는 조종하기 쉬울 것 같군,' 그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좋아. 첫 임무는 북부 영지의 반란자들을 처리해주겠나? 그들을... 봉인해주게."

고유의 표정이 급변했다.

"네? 잠깐만요, 사람을 봉인하라고요? 제가 왜요? 제가 무슨 보안업체 직원인가요? 균열이나 마물이면 모를까, 인간을 봉인하라니... 그건 좀..."

알현실이 조용해졌다. 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용사라면 당연히 왕국의 모든 위협을 제거해야 하지 않겠나? 여신께서 선택한 자로서..." 왕의 목소리에는 위협이 담겨 있었다.

고유는 마른 침을 삼켰지만, 수많은 부당한 야근 지시와 면접 경험을 통해 단련된 그녀의 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폐하, 제가 받은 사명은 '균열을 봉인하고 마물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고유가 또박또박 말했다.
 
"인간 대상 봉인은 제 직무 범위를 벗어납니다. 이는 명백한 부당업무 지시에 해당합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놀란 숨소리가 들렸다.

"또한 해당 업무는 제 능력의 남용으로, 여신님의 뜻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균열과 마물 봉인이 제 주 업무이니, 그쪽으로 지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르칸은 고유의 대담함에 놀란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왕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가 곧 억지 미소로 바뀌었다. 고유는 내심 만족스러웠다.

'200대 1의 경쟁률에 달하는 금융지원부 정규직 전환 면접보다 무서울까? 국왕이 뭐 어쩌겠어? 나 해고시켜봐, 여신이 뽑은 용사인데!'

고유의 눈빛에는 '꼬우면 어쩔건데'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여신이 선택한 자로군! 담력이 대단해!" 그가 말했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좋아, 균열과 마물에 집중하게. 하지만 기억해두게... 왕국의 안위는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왕은 더 이상 반란자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아르칸, 용사에게 왕국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게. 특히 서부 균열에 관해서."

아르칸이 앞으로 나섰다.

"네, 폐하."

고유는 속으로 생각했다. '직장 상사보다 더한 왕이네... 하지만 나는 용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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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현실을 나오자마자 고유는 아르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휴, 저런 상사 밑에서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 우리 회사에도 저런 부장이 있었는데... 김과장보다 더 심했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서 자기 일은 다 미루고."

아르칸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용사님, 그런 말씀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벽에도 귀가 있으니까요."

고유는 주변을 살피며 입을 가렸다.

"아, 네. 근데 저 잘했죠? 저 직무외 업무 안 해요. 균열이나 마물만 처리할게요."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왕의 분노를 사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아르칸이 말했다.

"그래서 서부 균열이 뭐죠? 그거 봉인하러 가는 거예요?"

아르칸은 고유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참 이상했다. 용사라기에는 너무 평범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 앞에서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니. 자신이 용사였을 때는 모든 명령에 복종했었는데...

'이 여자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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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경계에 균열이 생겨난 것은 200년 전의 일이었다. 균열 사이로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 그때 여신 다란은 특별한 힘을 가진 이를 '용사'로 선택했다.

아르칸 라 벤즈는 그 첫 번째 용사였다. 그는 수십 년간 균열과 싸웠고, 자신의 생명력을 바쳐 세계를 지켰다. 하지만 인간들의 이기심과 왕의 배신, 여신의 무관심은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과거로 회귀한 아르칸은 복수를 다짐했다. 세계를 구원하는 대신 파괴하기로. 그는 왕실 자문관이 되어 은밀히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새로운 용사가 나타났다. 고유. 아무것도 모르는 현대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그녀를 없애려 했지만, 그녀의 특별한 봉인 능력과 당당함은 아르칸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제 두 사람의 운명이 얽혀간다. 세계를 구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그 선택은 오직 그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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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균열은 얼마나 많은 거예요?" 고유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아르칸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에이, 셀 수 없이 많다니... 그냥 '많아요'라고 하면 안 돼요?"

아르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많습니다."

"그것 봐요, 말하기 더 쉽죠?" 고유가 장난스럽게 팔꿈치로 아르칸을 툭 찔렀다.

처음엔 굳어있던 아르칸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진다.

"용사님은... 참 특이하십니다."

"아, 고유라고 불러요. '용사님'은 너무 거창해요."

"...고유씨."

"그렇죠! 우리 내일부터 열심히 균열 봉인하러 다녀요!"

아르칸의 얼굴에 오랜만에 진짜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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